네이버의 ‘본좌’ 김범수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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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범수(42·사진) 전 NHN 공동 대표 겸 공동 창업자가 인터넷 업계로 돌아온다. 지난해 9월 돌연 NHN USA 대표직을 던지며 경영에서 물러나 자취를 감춘 지 10개월 만이다. 그는 ‘한국판 소프트뱅크’를 만든다는 새로운 꿈을 들고 왔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출발점이다. 종자돈은 NHN 주식 매각으로 벌어들인 400여억원. 12일 서울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언론과의 만남은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이다.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자취를 감춘 이유는.

“나는 야전사령관 스타일이다. NHN이 커지면서 공동 창업자란 이유로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보며 ‘깔끔한’ 경영을 맡게 됐다. ‘하고 싶고, 의미 있으며,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인생철학에도 어긋났다. 어느날 벤처 초심이 그리웠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쉬고 싶어졌다.”

-경영에서 물러난 뒤 ‘공동 창업자 간 불화설’ 등이 돌았는데.

“오히려 이해진 최고전략책임자(CSO)에게 미안했다. 내 결정에 깜짝 놀란 그는 말렸다. 그러나 내 스타일을 알기에 이해해 주었다. 모양새 좋게 하려고 비상임 등기이사 자격을 주어 인연은 이어졌다. 그마저도 11일 그만뒀고, 오늘부터 내 일을 시작한다.”

-명함에 ‘아이위랩’ CEO로 적혀 있다.

“‘한국판 소프트뱅크’를 만들고 싶다. 아이위랩은 미국에서 ‘브루닷컴’을 선보일 예정이다. 네티즌이 글·이미지·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트를 주제별로 수집하는 ‘컬렉션’ 기능과 이들 콘텐트를 공유·축적하는 인맥서비스(SNS)를 결합한 영문 블로그다.”

-왜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두었나.

“아이위랩의 사무실은 실리콘밸리(마운틴뷰)와 경기도 분당, 두 곳에 있다. 최신 정보를 얻고, 최고의 벤처캐피털에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과 미국을 수시로 오가는 피곤한 생활이지만 예전보다 재미있다.”

-미국과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다르다는데.

“미국은 실패도 좋은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디어만으로도 캐피털이 투자한다. 실패한 벤처인이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창업 초기 자금이 없어 내 돈은 물론 가족 재산까지 끌어들인다. 실패하면 끝이다. 한국에서 벤처 창업이 줄어드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비즈니스를 시작한다는데.

“이달 말 ‘집단지성’ 기반의 정보 추천 사이트 ‘위지아’를 오픈한다. 한 네티즌이 ‘올여름 꼭 가봐야 할 휴양지’라는 질문을 올리면, 다른 네티즌들이 답하거나 동의를 하는 형식이다. 질문자가 답의 순서를 주관적으로 정하는 네이버의 지식IN과 달리 네티즌의 동의가 많은 답이 먼저 보여지는 서비스다.”

-지인들에게 100개의 벤처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는데.

“브루닷컴·위지아 등 비즈니스를 별도 법인으로 키우는 등 한 해에 수십 개씩 벤처기업을 출범시킬 생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내가 번 돈은 몽땅 한국 벤처기업을 키우는 데 쓸 생각이다.”

이원호 기자

◇김범수=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NHN’을 이해진 이사회 의장 겸 CSO와 함께 일궜다.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한 뒤 이 CSO가 세운 네이버와 2000년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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