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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기행>"악령의 땅"-티나 로젠버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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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구 동독 공산당 제1서기 에리히 호네커를 위시한 몇몇 요인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것은 92년11월의 일이다.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발포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저지른 수백명에 대한살인행위가 그 혐의사실이었다.
그러나 호네커는 처벌을 면했다.중증 간암을 진단받은 호네커는칠레의 사위에게 가 1년남짓의 여생을 보내도록 허락받았다.다른세명의 고위관리는 93년9월 4년반에서 7년반에 이르는 징역형을 언도받았다.이 재판이 드러낸 청산의 한계는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책임자 에리히 미엘케의 경우에서 제일 두드러진다.그는수많은 혐의로 기소되어 있지만 93년10월에 언도받은 6년형 외에 다른 판결을 또 받게 될 것같지 않다.87세의 고령으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미엘케가 실형을 언도받은 바로 그 죄목이다.23세때(31년)시위중 순경의 사망에 연루된 혐의로 나치정권에 의해 기소된 사건이다.슈타지의 엄청난 비인도적 범죄를 다 놔두고 나치에 저항한 60년전의 일 로 유일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아이로니컬한 일이다.
티나 로젠버그가 91년에서 94년까지 독일.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를 취재해 쓴 『악령(惡靈)의 땅』(원제:The Haunted Land.랜덤 하우스刊)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를 출발점으로 한 책이다.
공산정권의 붕괴라는 지각변동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단층을 가져왔다.남편이 아내를,아들이 아버지를,친구가 친구를 비밀경찰에 팔아먹은 일이 일시에 드러났다.일부 계층이나 집단에 국한된일이 아니었다.동독의 경우 1,600만명의 인구 중 600만명에 대한 사찰자료가 슈타지에 비치되어 있었다.어린아이들을 제하고 전 인구의 꼭 절반이다.
슈타지의 정규직원만 10만명에 가까웠고 등록된 협력자 수는 그보다 더 많았다.
수시로 활용된 정보제공자의 수는 100만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압수된 슈타지 문서의 전체 무게는 6만2,500이었다.국민 1인당 평균 4㎏의 슈타지 문서를 짊어지고 살아온 셈이다. 이 문서의 공개가 독일 과거청산의 중요한 국면이 되었다.
통독 직전 동독의회는 가우크 위원회에 슈타지 문서의 관리를 맡겼고,이 위원회의 위상과 몇가지 문서관리 원칙은 나중에 독일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았다.가우크 위원회의 가장 혁명적 인 원칙은 모든 피사찰자에게 자기 문서철의 열람권을 준 것이다.슈타지의 어떤 요원이 자신에 관한 어떤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수집하고 정리했는지,자신에게 어떤 공작을 행했는지 모든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과거 체제에 공헌한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드러내고 피해자들이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원칙은 참으로 「풀뿌리에 의한 청산」의 길이었다.모든 것이 당사자들에게 공개되어 더 이상 음모나 협박의 꼬투리가 남지 않게 하였으니,이웃나라들에 비해 밝은 길을 가해자.피해자 모두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로젠버그의 폭넓은 조사는 이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사실을 밝힌다.슈타지 협력자 대부분은 자신들의 행위가 노출될 것을 예상하지 못한채 부부간.부자간.친구간의 새로운 신뢰를 쌓기 시작할 기회를 놓친다.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뒤에는거짓말과 변명으로 불신을 증폭시키는 일이 거듭된다.
로젠버그는 이 불행한 사태가 도덕성의 실종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진단한다.과거를 반성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반성의 새로운 기준을 찾기가 어렵다.흡수통일의 결과 서독 출신들이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지는데 대한 피해의식과 나치 청산이 미흡했던 서독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의구심이 뒤얽히고,민주주의보다 자본주의원리가 세상을 휩쓰는데 어지러움을 느낀다.동독의 반체제 투자 출신들마저「이긴 자의 정의」에 대한 반감을 키우게 된다.법적 청산의 한계는 자명하다.전체주의체제 의 범죄성은 현대적 현상이다.억압체제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집합은그 사람들의 개별적인 범죄성을 총합한 것보다 엄청나게 큰 범죄성을 띨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체제의 범죄성이 죄형법정주의.
형법불소급의 원칙등 고 전적 법이론으론 효과적인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뉘른베르크에서도 확인된 일이다.
정치적 청산도 한계를 보였다.87년 본 방문으로 동.서독간 동반자 관계를 확립했던 호네커가 92년말 50년전 반(反)나치투쟁으로 투옥되었던 바로 그 모아비트 법정에 끌려와 재판의 부당함을 통박할 때 법정은 숙연했다.온 독일이 숙 연했다.경제력이 넘치고 외침의 위협이 없는 독일사회에는 어떤 정치적 이슈도청산의 과정을 강력히 규정할 힘이 없는 것이다.
독일 연방의회는 92년3월 조사위원회(Enquetekommission)를 구성했다.『동독사』편찬이 그 궁극적 임무다.사법적 규제력을 가지지 않은 이 위원회의 활동에 많은 동독인들이 열렬히 호응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 까.위원회가심판자로 군림하지 않고「참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살피는데 주력하기 때문이다.협박에 못이겨 협조했다고 생각하는,스스로를 피해자로만 생각하려드는,「회색지대」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반성하게 해주는「역사적 청산」의 길에 로젠버그는 희망을 둔다.제도가 현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대세계에서 전체주의 체제의 범죄성을 밝히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해석하는 길이 필요하다는것이다. 그것은 법적.정치적 청산을 도피하기 위한 역사가 아니라 모든 다른 노력이 미치지 못한 곳을 마무리하는 역사의 역할이 될 것이다.
김기협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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