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1만弗시대의문화>3.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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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노 밀리언셀러」의 한해였다.조정래의 『아리랑』,김주영의 『화척』등 굵직한 대하소설이 완간된 해인데도 밀리언셀러가 터지지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출판계가 「해방후 최악의 불황」이라고 입을 모으는 배경을 알만하다.
그러나 올 한해의 독서경향을 살펴보면 그것은 베스트셀러에 길들여진 우리 출판계의 「체감불황」일 뿐이다.정확한 도서 판매량집계가 없는 실정이지만 국내 최대 매장인 교보문고의 경우 베스트셀러 50위권의 판매량에선 지난해보다 30%가 량 떨어졌지만전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베스트셀러의 「산실」이었던 소설류에 쏠렸던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분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올해 각광을 받았던 분야는 경제.경영 쪽의 실용서와 외국어,여성 커리어우먼들의 자전에세이,한국적인 소재의 책들.실용서도 요리.디자인.육아 등으로 점점 세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여기에서 정보화사회와 소득 1만달러시대 독자들의 독서 취향의 변화가잡힌다. 새로운 독서경향은 「가능한 한 많은 정보와 다양한 정보」에 대한 욕구로 요약된다.
이제 1만~2만부 판매로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한 때라고 하겠다.여기에 여유를 찾게된 주부들이 대거 독서층으로 등장한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올해 이런 취향을 만족시킨 대표적인 책들로는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시리즈와 현암사의 『우리가 알아야 할 100가지』시리즈,한호림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임채성의 『컴퓨터 길라잡이』,전유성의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 만큼 한다』,조화유의 『이것이 미국영어다』,S J 몰린스키의 영어회화교재『사이드 바이 사이드』,유태종의 『음식궁합』,이정순의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등.정말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일까 싶을정도로 분야가 다양해졌다.올해 베스 트셀러 50위권에 컴퓨터분야가 4종,외국어가 4종,요리관련서가 2종이 들어 있다.
그러나 올드미디어(활자)와 뉴미디어(영상)가 병존하는 과도기에 놓인 우리 출판계가 부진한 것만은 사실이다.대한출판문화협회의 11월말 현재의 통계를 보면 발행종수가 지난해보다 6% 정도 감소했다.일본의 지난 100년 역사에서 보듯 출판이 시대의변화를 앞서가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다는데 원인이있다. 공공도서관이 없는 현실에서 그 역할을 맡고 나선 도서대여점의 난립,전근대적인 유통구조,출판사 1만개 시대의 과당경쟁등 출판계의 구조적 모순에다 기획력마저 뒤떨어지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외국의 예에서 보듯 소득과 독서의 상관관계를 똑 떨어지게 찾기는 어렵다.출판평론가 이중한(李重漢)씨는 『일본의 경우 소득수준이 낮았던 시기에 번역서를 중심으로 독서열기가 더 뜨거웠다』고 말한다.그러나 대체로 봐서 소 득이 늘 경우 인쇄매체의 수요도 는다는 것이 중론이다.하지만 영상이 강조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영상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때문에 소득 1만달러 시대에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선출판계만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의 적극 적인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공공도서관 제도가 부러울 정도인 미국에서는 전자매체가 논의되던 84년 한 독서전문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독자들이 한 분야에 관심을 쏟는 기간도 더욱 짧아지고 시간적 여유도 더 적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영화와 책을 동시에 발행하는 등 영상과 인쇄매체의 결합도 바람직하다.서점의 경영기법 현대화,서점망 확대,우편판매 강화,독자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판매전략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색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84년에 도서판매의 15%가 우편으로 이뤄졌다.10여년 전의 이 기사에 나타난 조언이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미국에서는 「종이책의 죽음」이란 예언에도 불구하고 매년 10%가까운 매출고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크게 보아 우리 출판계도 이런 쪽으로 흐를 전망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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