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강1만리>23.사천성-靑城山 도교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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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조(曹操)와 손권(孫權)이 각각 중원과 강남지역을 아우르자 초조해 하던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천하삼분 계책을 받아들여 선택한 약속의 땅이 사천(四川)이다.
소수민족의 요람인 운남(雲南)성을 통과한 양자강의 흐름이 한족(漢族)문화권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대륙의 중서부지역이다.크기는 한반도의 2.5배(57만평방㎞)이고 인구는 1억700만명.
현지 안내인은 『세계 인구 50명중에 사천 사람이 반드시 1명이 있다』며 익살을 부렸다.
옥야천리(玉野千里)-.아늑한 정감과 풍부한 물산,후덕한 인심이 한인(漢人)지역의 요족(饒足)함을 짐작하게한다.생활이 여유롭고 시속이 순박하다 보니 자연히 그 예술과 종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금(古今)의 대가들이 속출하고 천극( 川劇.사천극이라는 뜻)이라는 독특한 공연예술을 배태했는가 하면 도교와 불교의 요람이기도 하다.
신라 왕손 무상선사(無相禪師)가 여기에서 정중종(淨衆宗)을 개창했고 저 유명한 아미산(峨眉山)이 오대산.구화산.보타산과 더불어 중국불교의 4대성지로 꼽히고 있으며 청성산(靑城山)이 한족 고유의 민중종교인 도교의 발상지인 점은 사천 과 종교의 함수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7월 중순 탐사팀이 찾은 사천성의 수도 성도(成都)근교에 자리한 청성산은 이름 그대로 푸른 성채요,푸른 수해(樹海)였다.
가파른 산곡의 이끼도 유난히 푸르고 산정에 걸린 하늘도 더없이푸르렀다.하지만 청성산이 찾는 이의 가슴을 진정 푸르게 물들이는 것은 도처에서 배어나는 그윽한 도교적인 체취때문이다.
산 중턱에 있는 고상도관(古常道觀.도관은 도교의 사원)의 넓은 터 가운데엔 팔괘(八卦)조각이 새겨져 있고 청성산 맑은 공기를 향불냄새가 가르는 가운데 2층 목조누각이 천년 세월을 버티며 서있다.누각 2층에 걸려있는 세개의 편액을 살펴보니 낯익은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지극한 선은 물의 속성과비슷하다)」라는 글이 눈에 띈다.
오후 5시.중국인의 시조인 황제(黃帝)상을 모셔놓은 예배당 안에서 7명의 여자 도사(道士)들이 예배를 드린다.북과 목탁,심벌즈같은 청동타악기를 하나씩 들고 극히 낮은 소리를 내면서 독경을 시작했다.연주는 오로지 독경소리를 보조하기 위한 배경음의 기능만 한다.악기들은 청동화로를 그대로 가는 채로 두드리는것과 같이 소박한 것이 대부분이며 이 화로를 한번씩 재앵-재앵-하고 두드리면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여신도들이 벌떡 일어나절을 하고 앉는다.독경하던 도사에 게 어떤 내용이냐고 묻자 『백성을 고통과 역경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취재팀이 찾은 고상도관은 풍수지리적으로 음지(陰地)인 탓에 여자 도사들만 수련하고 있어 곤도묘(坤道廟)라 하며,양지(陽地)터인 산 정상 근처의 도관은 건도묘(乾道廟)라 하여 남자 법사들만 있다.
이들은 오전과 오후 각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백성의 복을 비는 예배를 황제와 상제(上帝.하느님)에게 올린다.중국 도교는동한(東漢)때의 장릉(張陵)으로부터 비롯된다(서기 2세기).장릉은 황제와 노자의 학설을 근거로 해 소위 오두 미도(五斗米道)를 확립했다.백성들이 쌀 다섯말을 갖다 바치면 병고와 생활.
전란의 고통에서 구원받게된다는 뜻으로 오두미도라 한 것이다.교조인 장릉은 청성산 연봉인 학명산(鶴鳴山)에서 도를 닦고 포교를 시작했다.
***과 의(科儀)음악 또는 법사(法事)음악이라고도 하는 도교음악은 전대의 무교(巫敎)음악과 궁중제사음악,불교및 각종 민간음악을 자양분으로 틀을 잡아갔다.과의음악은 교파나 지방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독경을 이루는 소리에는 전국적으로 공통인 시방운(十方韻)과 지역적 특성을 띠는 지방운(地方韻)이 있다.지방운은 해당 지역의 민요나 설창.가무등과 밀접히 연결돼 지역적 풍격을 짙게 보여주기도 한다.
청성산 도교음악의 독경소리는 이 지역의 유명한 설창(판소리와비슷)인 사천청음(四川靑音)과 영향을 주고 받은 것이다.배경음이 되는 기악부문은 악기 규모에 따라 소악(小樂) 또는 세악(細樂)과 대악(大樂)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음향이 유화하고 음량이 적은데 비해 후자는 음향이 꿋꿋하고 음량이 풍성하다.고상도관에서 들은 음악은 조촐한 음량의 세악인 셈이다.
도교가 중국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해 있듯이 그 음악이 중국음악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우리 국악에서 노른자위 곡목으로 손꼽히는 보허자(步虛子)음악도 실은 도교음악의 한 갈래임을상기한다면 도교음악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광범위하 게 퍼져 있는것이다. ▧ 다음회는 「중국 기예극의 원조-사천변 검」편 입니다.
글=한명희 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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