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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자칭 '경계인' 송두율의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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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루이제 린저는 독일의 친북한 여류작가다. 그는 1983년에 발간한 '북한 여행일기'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인상을 이렇게 썼다. "나는 괴테가 나폴레옹에 대해 한 말을 떠올렸다. 여기 한 인간이 있다. 김일성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한 인간이 있다고."

김일성을 나폴레옹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김일성에 대한 서양 지식인의 최고의 예찬이었을 것이다. 송두율은 '역사는 끝났는가?'(95년)라는 평론집에 린저의 이 말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린저가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종교가 없는 사회에서 종교적 우상이거나 유교적. 봉건적 정치문화의 유산"이라고 지적한 것을 주체사상의 가장 난해한 부분에 접근하는 키워드로 환영하는 것 같다.

*** 남의 입과 글 빌려 북한 찬양

송두율은 주체사상을 국제적 흐름을 무시하는 자폐증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적 흐름까지 호흡하는 비판적 자의식(自意識)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수령을 인간활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뇌수(腦髓)와 같다는 비유와, 기업의 국가적.전인민적 소유와 일당독재를 긍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의견을 자기 말이나 글로 직접 표현하지 않고 누가 어디서 이렇게 지적한다, 보여준다는 식으로 남의 입과 글을 빌려 후환을 없애려고 했다.

송두율은 북한을 '내재적으로' 보자고 말한다. 쉽게 말해 경험을 초월한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밖에서, 밖의 기준으로 북한을 보지 말고 북한 체제가 이룩한 역사적인 업적을 토대로 북한을 보자는 발상이다. 그는 칸트의 '내재적-비판적' 방법이라는 어려운 개념까지 원용(援用)해 북한을 내재적으로 들여다 봐도 충분히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법원은 그의 북한 노동당 가입(73년), 정치국 후보위원 선임(91년), 친북 저술활동, 22차례의 북한 방문 등의 검찰 공소사실을 인정해 그에게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는 91년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정보당국에 의하면 북한으로부터 15만달러 정도를 받았다. 그는 '장군님에 대한 충성맹세'의 글을 쓰고 김주석 사망 때는 김정일 위원장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송두율, 나폴레옹과 김일성의 비유를 긍정하는 그가 경계인일 수 있는가. 그의 북한관이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비판적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노"라는 대답이 법원의 판결이다.

그는 30년 전에 표표히 한국을 떠났다. 그는 왜, 무엇을 믿고 북한 찬미의 화려한 기록을 안고 30년 만에 귀국을 결행했을까. 이것이 송두율 사건의 수수께끼의 하나다.

그의 귀국은 지금 한국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이상징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풍조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총선거에서 특정 정당 지지를 금지한 선거법을 공공연히 위반하겠다고 선언하는 세태 같은 것이다. 송두율이 한국에서 과거 행적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면 그건 국가보안법에 의해서일 것이다. 송두율과 그를 초청한 단체에는 보안법은 냉전시대의 유물로 지킬 가치가 없는 것이다.

*** 30년 만의 귀국 결행한 까닭

강금실 법무장관까지 실정법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발언을 했다. "宋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할지라도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한국 사회가 깊이 빠져들고 있는 이런 몰가치 상황(Anomie)이 송두율과 그의 친구들에게 귀국 결행의 동기를 부여한 게 아닐까. 악법도 법이다. 송두율은 악법이라도 그걸 고칠 때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외면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의 주류와 정부의 정서가 친북 반미로 흐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송두율이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목으로 중형을 선고받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이율배반적.과도기적 현실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졌을 철학자. 사회학자의 판단에도 혼란을 빚을 만하다. 송두율이 동정을 받을 여지가 있다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의 귀국은 너무 늦고 너무 빨랐다. 그가 감방에서 자신의 저서를 비판적으로 다시 읽는다면 재기의 길이 보일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