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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Movie TV] 조정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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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 감독의 2000년도 영화 제목). 아니, 죽이게 예쁘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4년. 지금 이땅에서는 '예쁘다'의 반대말이 '못생기다'가 아니다. 차라리 '나쁘다'에 가깝다. 안 예쁘면 나쁜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얼꽝'(얼굴이 '꽝'이라는 은어)이라고 무시당하고, 사회 첫 관문 앞에서는 '용모단정'이라는 문턱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대접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봐달라는데도 우리나라 사람들, 참 야박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이고, "못생기면 성격도 나쁘다"나.

보통 사람들이 이럴진대 선남선녀만 모여 있다는 연예계에선 오죽할까. 예쁜 얼굴도 더 예쁘게 고치고, 날씬한 몸도 더 날씬하게 갈고 닦아 '얼짱' '몸짱'을 만들어야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곳이니. 그래서 조정린(20)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얼짱' '몸짱'은커녕 오히려 자칭타칭 '얼꽝' '몸꽝'인 아담하고 통통한 이 방년 20세 여자 연예인은 지금 연예정보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MBC) 리포터를 비롯해 오락 프로그램 '비타민'(KBS2) 패널에다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MBC)에 출연하는 등 장르를 넘나들며 TV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5월에 새로 시작하는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MBC)의 주인공 자리까지 꿰찼다. 조금이라도 자유분방한 얼굴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가혹한 시청자가 즐비한 요즘, 조정린의 활약은 일종의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못생긴 주제에 방송생활 그만하라"는 막말이 인터넷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네티즌보다 조정린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정규방송에 앞서 지난달 22일과 23일 '두근두근 체인지'의 파일럿(시험) 프로그램이 나간 후 뜨거웠던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도 이를 잘 보여준다. "내 얘기 같다" "조정린의 연기력에 놀랐다"는 찬사가 대부분이었다.

조정린은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2004 팔도 모창가수왕'대상 수상자인 박슬기, 영화배우 홍지영과 함께 추녀 3인조인 '시루떡 시스터스'로 나온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라는 의미로 '모두'란 이름을 얻지만 못생긴 얼굴 탓에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여고생 역할이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넣은 요술샴푸로 머리를 감고는 네 시간 동안 '얼짱'으로 변신한다.

"얼핏 보면 내용이 특이한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평범한 여고생 이야기예요.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찍으면서 정말 와닿았어요. 요즘 드라마 보면 여고생, 심지어 못생긴 여고생 역할도 다 예쁜 연기자가 하잖아요. 사실 모든 여학생이 그렇게 다 예쁜 건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두근두근'에는 저를 포함해 정말 못생긴 여자애 셋이 나와요. 우리 얼굴 보고 있으면 진짜 답답~하죠, 뭐. "

'모두'는 못생겨서 늘 수모를 당한다. 할인점 판매원은 샴푸 샘플을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모두'한테만 안 준다. PC방 캠카로 '45도 각도 법칙'을 이용해 최대한 예쁘게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엔 심지어 '못생겼다'는 댓글 하나 안 붙는다. '모두'는 궁금하다. '예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에이, 예뻐봤어야 알지."

혹시 조정린도 평소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정린은 "학창시절부터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나 못생긴 거 알지만 못생겨서 아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몸도 이렇고 얼굴도 이런 게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연예정보 프로 리포터로 나갔을 때, 조정린이 톱스타 못지 않게 멋지다면 연예인들이 편한 여동생같이 예뻐해주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오히려 조정린이 섭섭한 건 자신의 못난 외모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성공'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다.

"주변 사람들이 오늘의 조정린이 그냥 쉽게 만들어진 걸로 생각할 때 속상해요. 사실 노력 많이 하거든요. "

오늘의 조정린의 출발은 2002년 '팔도모창가수왕'이다. 당시 송혜교.김규리 흉내를 내 대상을 타면서 방송에 데뷔했고, 이후 '별을 쏘다'(2002.SBS)에 함께 출연했던 전도연이나 '발리에서 생긴 일'(2004.SBS)의 하지원에 이르기까지 소위 '얼짱'여자 연예인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리포터와 연기로 방송 폭을 넓히기는 했지만 조정린은 "시청자들이 처음 관심을 보이고 좋아해준 이유가 성대모사라 앞으로도 놓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는 녹화를 하든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로라도 꼭 본다.

"학창시절 선생님이나 친구 흉내를 잘 냈어요. 그런데 전문적으로 들어가다 보니 안될 때가 많아요. 남들이 안하는 성대모사를 해야 하니까요. '발리'의 신이를 보면서 '저거다'싶었는데 다음날 보니 100만명이 다 하는 성대모사가 됐더라고요."

조정린의 요즘 고민은 너무 예뻐진다는 것이다. 최근 살을 좀 뺐더니 PD나 기획사 사무실 사람 등 주변에서 "더 이상 예뻐지지 마"라고 아우성이란다. 아마 조정린을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마음 아닐까. 조정린만이라도 처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글=안혜리 기자
사진= 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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