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너무 많은’ 한국 선수에 LPGA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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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들이 너무 많다.”

그동안 미국 LPGA 투어에서 쉬쉬하며 떠돌던 소리가 TV에서 나왔다. LPGA 챔피언십을 중계하던 미국의 더 골프 채널은 9일 캐럴린 비벤스 LPGA 커미셔너와 인터뷰 도중 “한국 선수들이 너무 많고 미국 선수들의 활약이 적어 미국 내에서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LPGA 차원의 대책이 있느냐’는 물음으로 들렸다. 비벤스는 “ LPGA 투어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얼버무렸으나 너무 많은 한국 선수들 때문에 LPGA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미국 선수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한국을 포함한 비미국 선수들이 리더보드 상단을 줄지어 차지하면서 LPGA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LPGA 투어가 대회 코스 길이를 늘리고 있는 것도 샷 거리가 짧은 한국 선수들의 진입을 막아보자는 게 1차 이유라고 한다. 박세리가 1998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지 10년이 흘렀다.

박세리 혼자뿐이던 LPGA의 한국 선수가 지금은 전체 181명 중 45명가량이 나 될 정도로 늘었다. 이제는 KLPGA(한국여자프로협회)나 우리 선수들도 차분히 되돌아볼 때가 됐다. 한국 선수들의 미국행 러시가 문제점은 없는지, KLPGA 차원에서 제도상 손볼 점은 없는지 말이다.

일부 선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미국에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연 수억원이 드는 투어 경비를 대느라 등골이 휘는 데다 외국 선수들의 눈총까지 받아야 하는 2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도 쉽지 않다. 국내로 컴백하기 위해서는 시드 선발전을 치러야 하는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참에 해외 유명 투어에서 수준급 성적을 낸 선수가 U턴을 원할 경우 국내 대회에서 뛸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선수들도 무조건 외국행만 외칠 게 아니라 국내에서 내실을 다진 후 해외로 눈을 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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