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치매·중풍] 악착같은 1년 … 방실이가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지난달 2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의 한 재활병원. 가수 방실이(52)씨가 양미간을 찡그리며 발을 떼었다. 곁에서 유영열(34) 물리치료사가 부축하고 있었다. 네 발자국쯤 몸을 움직였을까. “악~.” 방씨의 입에서 고통을 못 이긴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왼발은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지만, 마비가 덜 풀린 오른발은 내디딜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온다. 잠시 미소가 사라졌지만 어렵게 휠체어에 앉자 방씨가 활짝 웃었다. “이게 참 힘들어. 그래도 나 오늘 참 열심히 운동했어요.” 어눌한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뭔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방씨는 이날도 걷기 운동 등 재활운동치료를 했다. 매일 반복되는 힘겨운 일들이었다. 신경을 살리기 위한 통증치료, 젓가락으로 모형 콩을 집는 작업치료도 했다. 모두가 지난해 6월 뇌졸중으로 전신이 마비된 이후 수십 번씩 포기와 재시도를 반복한 훈련이다. 모형 콩을 5초 만에 겨우 왼손으로 집은 방씨는 기자에게 “왼손으로 이렇게 집을 수 있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런 훈련 중 방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월·수·금요일에 하는 언어치료다. 약간 어눌해진 발음을 명확하게 만드는 훈련이지만 방씨의 목표는 따로 있다. 노래를 다시 하는 것이다.

“두 달 전쯤 의사한테 ‘평생 노래를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어요. 당시엔 우울증이 정말 대단해 운동도 거의 못했어. 하지만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열흘쯤 하니 음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배에 힘이 없어 복식호흡 연습도 함께한다. 방씨는 “나중에 의사 앞에 가서 노래를 부를 거야”라고 다짐했다.

◇의사도 놀란 회복 의지=몸에 이상이 생긴 지난해 6월 방씨는 지방 공연 등으로 한 달에 보름은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오른쪽 다리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전신마비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날 새벽 병원으로 실려간 뒤 방씨는 몸이 그냥 허공에 뜬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력도 희미해져 사람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병문안 온 사람을 안으려 하면 팔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얼굴까지 마비가 와서 말도 잘할 수 없었다. 방씨는 “왜 내가 여기 있나. 병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버릴까 생각도 했다. 이렇게 아프게 할 바엔 차라리 날 데려가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방씨를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님이었다.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전쟁 같은 노력이 시작됐다.

그가 노력 끝에 얼굴 근육을 움직여 처음 한 말이 ‘엄마’였다. 처음에는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지만 3개월 만에 왼손 손가락을 처음 움직였다. 그 뒤에는 왼발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의사가 2, 3년 걸릴 것이라던 휠체어 앉기도 3개월 만에 해냈다.

욕심이 더 났다. 대소변을 해결하려 연결해 놓은 호스와 오줌 주머니를 떨쳐버리고 싶었다. 의사는 대변을 보는 데는 3년, 소변 보는 데는 5년이 걸린다고 했다. 오기가 생긴 방실이씨는 그 길로 간병인에게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한 뒤 변기 위에서 15분 넘게 씩씩거렸다. “힘을 주니 배가 너무 아파 찢어지는 것 같았어. 결국 소변을 봤지. 간호사도 울고 나도 울었어요.”

대변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힘을 주다 막판에 소리를 꽥 지르기도 했다. 방씨의 이런 노력은 결국 의사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서 나 같은 경우 없다고 기록까지 해 놨대.” 방실이씨는 “기적이란 게 정말 있나 봐요. 첫째 기적은 살아난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나아지고 있는 것이죠”라고 했다.

◇“노래할 수 있는 그날까지”=방씨의 오른쪽 손과 발의 마비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동맥경화 같은 다른 병도 있어 하루에 알약 43개를 가루로 만들어 먹을 때도 있다. 걷는 것도 아직 어렵다. 무엇보다 노래하기 위해 ‘아야어여’를 하루에 1000번 가까이 한다. 복식호흡 훈련도 6개월쯤 더 해야 할 것 같다. 연습이 지나쳐 밤마다 턱살이 마비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지난 연말에 병원에서 환우의 밤 행사를 열었어요. 노래를 못하니까 처음엔 심사만 맡았는데, 같이하고 싶어 결국 ‘서울탱고’를 불렀어. 근데 마음은 이미 부르고 있는데 실제는 희한한 음이 나오잖아. 내가 우니까 다른 환우들도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방씨는 열심히 연습해 올 연말 환우의 밤 행사 때는 꼭 ‘서울탱고’를 제대로 부를 생각이다. 기다리고 응원해준 다른 환우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다. 방송에서 노래하는 것은 뒤로 미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완벽하게 부를 수 있을 때 부를 거예요.”

방씨가 생각하는 ‘그 완벽한 때’는 언제일까. “내년이면 될 것 같아. 나를 위해 14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와서 기도해 주고 간 미국 LA, 워싱턴 교포들한테도 공연하러 가야죠. 그때는 꼭 휠체어 안 타고 일어설 거예요.”

방실이씨는 낫게 되면 가장 먼저 부르고 싶은 노래로 ‘서울탱고’를 꼽았다. 꿈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노래기 때문이란다. ‘세 번째 기적’이 될 그녀의 ‘서울 탱고’ 열창을 들을 날이 머지않았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민상·이진주 기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J-HOT] '盧 청와대' 파견 관료 "죄인 취급 억울하다"

▶[J-HOT] 박희태 "청와대에 친박 인사 요직 기용 건의할 것"

▶[J-HOT] 패티 김 "이태리 남편, 고집 센 나 휘어잡은 무기는…"

▶[J-HOT] 대머리 방지 하려면 검은깨·콩·□□ 먹어라

▶[J-HOT] 세상과 소통 시작한 '선풍기 아줌마', 13년만에 취업도

▶인물기사 더 보기

▶Joins 인물정보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