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태풍 대피소 중소형주를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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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파출소를 피하고 나니 경찰서를 만난 격’.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최악의 고비를 넘기자 국제 유가 폭등이라는 더 큰 악재가 전 세계 증권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때는 경기 침체만 걱정하면 됐다. 하지만 국제 유가 폭등은 여기에 인플레이션이란 고민거리를 하나 더 얹었다. 1970년대 내내 세계 경제를 짓누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

이번 주는 국내에도 변수가 많다. 12일은 네 가지 파생상품의 만기일이 겹치는 ‘쿼드러플 위칭데이’다. 여기다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도 앞두고 있다. 안팎에 불안 요소가 많은 만큼 주 초반 약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국제 유가 폭등이 수급의 구조적 변화라기보다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 것인 만큼 유가가 기술적 조정을 받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안팎의 악재=국제 유가 폭등, 미국 경기 침체, 달러화 약세는 악재 ‘삼형제’다. 미국 경기가 침체할 거라는 예상이 나오니 달러 값이 떨어졌고, 이는 다시 국제 투기자본을 원유라는 안전자산으로 몰리게 한 원인이 됐다. 세 가지 악재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로 얽혀 있으니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여기다 미국과 유럽 금융 당국의 손발도 잘 안 맞는다. 국제 유가 폭등이란 악재가 상당 기간 전 세계 증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국내적으론 쿼드러플 위칭데이와 금통위가 같은 날 겹쳤다는 게 큰 변수다. 파생상품 거래를 청산하기 위한 프로그램 매물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 증시가 흔들릴 수 있다. 불확실성은 증시의 최대 적이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나온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촉발됐다. 시장에 의해 조정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국제 유가 폭등은 시장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준다. 시장기구만 작동한다면 유가가 무한정 오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중소형주 피난처 될까=국제 유가가 이렇게 가파르게 뛰면 국내 증시도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종목이 많지 않다. 더욱이 3월 17일부터 두 달간 이어진 회복장에서 거래소 시가총액 상위 100개 대형주는 21% 넘게 올랐다. 조정의 명분이 필요한 시점에 국제 유가가 ‘뺨을 때려준 격’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중소형주가 국제 유가 폭등이라는 태풍을 피할 피난처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후 지지부진했던 시기를 봐도 그렇다. 대형주는 3% 넘게 떨어졌지만 중소형주는 거의 빠지지 않거나 외려 소폭 올랐다.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진 대형주에 비해 전망이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형주에 희망적인 환경도 일부 조성되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이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중소형주 펀드 위탁운용에 나선다. 국민연금 김문수 팀장은 “이달 23일 3개 운용사를 선정해 총 1500억원을 맡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주식을 9조원 넘게 살 계획인 것에 비춰보면 큰돈은 아니다. 그러나 심리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대신증권 박양주 선임연구원은 “연기금의 대장 격인 국민연금이 사면 다른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주가지수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MSCI에 신흥시장 중소형주를 다루는 지수가 생기면서 국내 종목이 편입된 것도 호재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당장 세계 투자자들이 이들 종목을 사들이진 않겠지만 관심은 분명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민·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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