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대장경의비밀>上.해인사板庫 온.습도 조절에 이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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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 팔만대장경은 7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작과정이나 보존방법등이 신비의 베일에 싸여있다.해인사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스님.책임연구원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와 중앙일보는 지난해부터 1년여에 걸쳐대장경에 대해 학술조사를 실시했다.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팔만대장경 보존의 비밀,보존현황,영구보존대책등을 상.중.하로 나눠 밝힌다.
[편집자註] 이번 조사에서 경판을 새긴 나무의 종류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전체의 83%나 차지한 것으로 처음 밝혀졌다.
또 사용된 나무의 종류도 10가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동안에는 정확한 조사없이 막연히 자작나무나 후박나무일 것으로 추정 했으나 X선촬영등 기법을 동원,조직검사등의 조사를 한 결과경판의 수종(樹種)이▶산벚나무▶돌배나무▶단풍나무▶자작나무▶박달나무▶후박나무▶층층나무▶굴거리나무▶소나무▶잣나무등 10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表).그러나 이중에는 단풍나무 와 조직이비슷한 고로쇠나무나 후박나무와 비슷한 녹나무도 있을 가능성이 있어 현재 진행중인 심층분석결과가 나오면 나무의 종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종조사결과 경판의 주종은 산벚나무(70%)와 돌배나무(13%)였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정반대로 자작나무의 경우 극히적은 양(1%)이 경판 마구리용으로만 쓰였다.또 대부분의 나무들이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잘 자라는 종류인데 반해 남해안지방에만 분포하는 후박나무와 굴거리나무가 적으나마 포함된 것은 강화도 이외의 판각장소로 알려진 남해분사(南海分司)의 실존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하루 5수량의 습도조절 습도는 특히 목재문화재 보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금까지는 팔만대장경 판고(板庫)가 있는 해인사지역이 비교적 습기가 적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조사결과 오히려 습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表).
목판의 경우 적정한 습도는 최소 60~70%이상으로 너무 높으면 썩기 쉽고 너무 낮아도 뒤틀리는 특성이 있어 적정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해인사 주변의 습도는 연중 인근지역에비해 6~10%가량 높다는 것.그럼에도 경판이 온전히 보존돼온것은 해발 645에 있는 판고가 지역적 특성상 3개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으로부터 1㎞쯤 북쪽에 위치,바람이 항상 불어 자연적인 습도조절이 이뤄지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판고의 시설자체가 기막히게 조절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현재 경판은 5단으로 된 판가 각 단에 빼곡이 세워져 있는데이때문에 밑에서부터 맨위까지 경판사이 틈을 통해 바람이 지나면서 골고루 습도를 조절해준다는 것이다.이번 조사 에서는 특히 흔히 동원되는 판고 안 공간의 습도를 재는 방법 대신 감지력이센 습도계를 이용,경판표면의 습도까지 쟀는데 이 결과 경판 한장당 하루에 최고 60까지 습도량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다시 말해 판고 전체에 하루 5 가량의 물이 경판에 뿌려졌다가 마르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작용은 특히 한여름철 수분증발때 열을 빼앗는 온도조절기능까지 해 곰팡이나 썩음균등의 서식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실제로 판고 전체의 온도를 잰 결과 1.
5도의 차이밖에 나지않아 최신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결이라는 것이 조사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같은 온.습도조절에는판고지붕의 기와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이는 구운 기와(燔瓦)만이 가지는 보습기능 때문으로 지난 여름 누수때 일반기와를 이용해 지붕을 수리하려던 것이 오히려 무모한 정성(?)임이 입증된 셈이다.
***특수비방의 옻칠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표면에 옻칠을 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칠기법이나 사용재료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
일반적으로 글자를 새기고 교정작업을 마친 목각판은 표면에 먹물을 칠하거나 콩의 전즙과 송연으로 처리한 뒤 판가에 보관하는것이 보통인데 대장경판의 경우 보존.치장을 위해 특별히 옻칠을했으며 이같이 방대한 분량의 목각판에 옻칠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무이(有一無二).
옻칠을 한 방법은 목각판 표면에 진한 먹을 발라 바탕인 소지(素地:白骨이라고도 함)를 염색한 뒤 그 위에 다시 안료가 섞이지 않은 생칠(여과와 탈수등 초보적인 정제를 한 생옻)을 2~3차례 한 것으로 밝혀졌다.다만 일반적인 목기와 는 달리 칠공정의 일부가 생략됐는데 이것은 칠재료의 절약과 일손을 덜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경판의 특성상 칠막이 지나치게 두꺼울 경우 양각된 글자의 윤곽이 무디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배려때문으로분석됐다.옻칠이 벗겨진 마구리등이 다 른 부분보다 훼손이 심한것으로 드러나 옻칠 자체가 경판보존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결과 칠의 두께는 대부분 55~65㎛가량으로 균일한 편이며 칠면을 깎아내기 위해 숯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또 먹으로 밑칠을 한 것은 소지의 염색과 함께 경판표면의 결을 메워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더 풀린 궁금증들 지금까지 경판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졌던 경을 찍어내는 인경(印經)작업이 사실은 작업과정에서 사용되는 풀의 전분성분 때문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으로 밝혀진 반면 소금물 세척은 천연소금의 보습효과 때문에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또 경판의 마구리를 싸고 있는쇠붙이의 대부분이 순도 99.6%의 구리인 것으로 밝혀져 전기분해기술이 없던 당시로서는 거의 신비에 가까운 야금기술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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