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판타지 마케팅으로 사람·돈 빨아들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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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16면

호주 골드코스트의 Q1빌딩 77층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변과 짜임새 있게 개발된 네랑 강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1년 내내 내리쬐는 태양과 60㎞ 규모로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 세계적인 휴양지 골드코스트는 호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다. 8년 전만 해도 40만 명에 머물렀던 인구는 지난해 말 52만 명을 넘어섰다.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와 23억 달러의 관광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양도시, 부산의 현실은 갑갑하다. ‘첨단 해양레저도시’라는 꿈은 아직도 희망일 뿐이다.

버려진 습지서 ‘황금 해변’ 탈바꿈, 호주 골드코스트

어떤 청사진이 필요할까. 불과 50년 만에 버려진 습지에서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는 ‘황금 해변’으로 탈바꿈한 골드코스트에서 그 성공의 조건을 찾아봤다.

아파트 숲으로 포위된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헬기에서 내려다본 생추어리 코브 전경. 마리나를 비롯한 편의시설이 숲과 강을 따라 들어서 있다.

골드코스트 북단의 쿠메라 강변에 위치한 ‘생추어리 코브(Sanctuary Cove)’. 지난달 이곳에서는 호주 최대의 국제 요트 쇼가 열렸다. 수백만 달러가 넘는 수퍼 요트부터 바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딩기 요트까지 등장했다. 4㎞ 둘레의 마리나(요트 정박시설)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460여 척의 요트로 가득 찼다. 요트쇼 4일 동안 총 2억 달러에 달하는 요트계약액을 기록했다.

고유가와 경기침체라는 악재에도 요트 쇼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비밀은 마리나 건너편에 있다. 배들이 전시된 곳에서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수백만 달러짜리 호화 주택들이 밀집한 마을이 나타난다. 각 주택에 딸린 선착장에는 1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요트가 정박해 있다. 이 배의 주인들이 바로 요트 쇼의 VIP 고객이다.

집과 요트를 쫓아서 VIP 몰려
수로 변에 호화 주택을 짓는 방식은 원래 골드코스트 남쪽의 네랑 강변에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 네랑 강변에는 부동산 개발 붐이 일었다. 부동산 업체들은 앞다퉈 네랑 강변에 수로를 내고 집을 지어 팔았다. ‘골드코스트’란 이름도 이때의 건설 붐이 ‘골드러시’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현재의 네랑 강변은 수로와 숲, 주택과 요트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네랑 강변의 주택 공급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부동산 업체들은 생추어리 코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생추어리 코브는 모기와 벌레들이 득실대던 습지였다. 쿠메라강과 남태평양이 만나는 이곳에 최고급 마리나 시설과 골프코스, 5성급 리조트 호텔, 병원,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부자들이 몰려들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멀파가 2002년 이 지역 개발권을 얻은 이후 규모가 더욱 커졌다. 현재 1000여 가구가 입주해 있다. 멀파사 최고경영자(CEO) 제프 그래디는 “입주민 중에는 뉴질랜드·영국·일본 등 외국인이 상당수 있고, 한국인도 15~20명 거주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형태의 주택촌이 쿠메라강 하구의 소버린 아일랜드에도 있다. 700여 가구가 입주한 이곳은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태평양에 보다 가깝고 골드코스트의 주요 해변과 인접했다는 점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다.

골드코스트는 마리나 시설과 요트 제조 업체가 들어서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골드코스트시는 2000년 쿠메라 지역에 요트 제조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해 70여 개의 요트 제조업체와 요트 2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마리나 시설을 유치했다. 공사 규모만 1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리비에라·퀸트렉스·무스탕 등 세계적인 요트 제조업체들이 들어선 이곳 단지는 호주 최대 규모다.

1년 내내 계속되는 다양한 축제
골드코스트가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4대 테마파크’라고 불리는 대형 공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4대 테마파크’란 드림월드·시월드·무비월드·웻앤와일드를 아울러 일컫는다. 이 공원들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각기 다른 테마의 환상을 체험케 한다.
미국의 유명 미디어그룹인 타임 워너사가 91년 개장한 무비월드는 베트맨과 스파이더맨 등 유명 영화의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스턴트 재현과 영화 주인공 차림의 도우미 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대형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드림월드(81년 개장)는 화려한 첨단 기구를 활용해 TV 프로그램 촬영지로 이름을 높였다. 웻앤와일드(84년 개장)의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의 수영장과 대형 미끄럼틀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테마파크 출구조사에 따르면 골드코스트에 방문한 관광객의 절반은 이들 4대 테마파크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코스트 해변에서는 인디 자동차 경주와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 경마대회, 요트경기, 철인 삼종경기, 마라톤, 카니발 쇼 등 다양한 축제가 1년 내내 펼쳐진다. 해변에 설치된 야외 그릴에는 가스와 온수가 무료로 제공돼 관광객들은 즉석 바비큐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부자와 관광객이 끊임없이 몰려들게 만드는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골드코스트의 성공 비결이다.

22년째 그대로인 부산 수영만
국내 마리나 시설 중 최대 규모(14만2000㎡)인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해 지어진 이곳의 현재 모습은 22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해상계류장과 수리소는 낙후됐고, 문화 부대시설은 자동차극장과 부산 영화촬영 스튜디오가 전부다. 지삼업 부경대 교수(해양스포츠산업과)는 “경기장 건립 당시 정부가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데 급급했지, 대회 이후의 활용에 대해서는 폭넓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요트 경기장 뒤쪽의 경관 좋은 공간을 80여 개 동의 아파트와 주상복합단지가 둘러싸고 있다. 골드코스트와 같은 개발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요트경기장 조성 당시 재원이 부족했던 정부는 경비를 매립지로 현물 지급하는 바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빌미를 제공했다.

부산시는 내년 6월 사업자를 선정해 2011년까지 요트장을 단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관광단지 등 배후시설 조성 계획은 여전히 없다. 엄서호 경기대 교수(관광학부)는 “수영만이 해양레저 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해선 마리나 시설 외에도 요트산업과 관광산업이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복합 벨트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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