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소방법 만들어준 1930년 대화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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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13면

1903년 12월 30일 오후 3시15분 미국 시카고 이로쿼이 극장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당시 극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뮤지컬 ‘푸른 수염의 사나이’를 관람하고 있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극장 지붕의 전기 배선에서 발생한 불길이 무대 옆의 커튼에 옮겨 붙었다. 스태프가 곧바로 방화 커튼을 내렸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절반 정도만 내려오다 멈춰서고 말았다. 무대에서 발생한 불길이 방화 커튼의 틈새로 빠져나와 쓰나미처럼 객석을 덮쳤다. 객석은 순식간에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모두 정신을 잃고 비상구 쪽으로 달음질쳤다. 소방차가 출동해 30분 뒤 불을 끄고 보니 비상구 안쪽에는 미처 탈출하지 못한 관객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비상구는 대부분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고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서로 먼저 나가겠다며 계단으로 돌진하던 사람들은 밀고 밀리다가 밟혀 쓰러졌다. 객석 의자에 그대로 앉은 채 화마에 휩싸인 사람도 있었다.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가 곧 목숨을 잃은 사람까지 합쳐 모두 605명의 희생자를 냈다.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과 여성이었다.

사고 발생 50일 전에 개관한 이로쿼이 극장의 객석 수는 1744석. 하지만 사고 당일 마티네 공연에는 1900명이 넘는 관객이 입장했다. 이 극장은 문을 열 당시 완벽한 소방시설을 갖췄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했었다. 실제로 석면으로 된 방화막도 갖췄다. 하지만 비상구를 27개나 갖췄다 해도 커튼에 가려져 있거나 공짜 관객을 막기 위해 굳게 잠긴 게 대부분이었다. 극장 출입문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열리도록 돼 있었다.

작은 손잡이를 작동해야 열리는 도개(跳開)식 문은 유럽에서 건너온 낯선 방식이어서 어린 학생들이 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침 부잣집 출신 학생이 집에서 쓰던 익숙한 방법으로 문 하나를 간신히 열었을 뿐이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도 아니고 멀쩡하게 잘 지어 놓은 현대식 극장에서 단 몇십 분 만에 6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단일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로 치면 미국 건국 이래 최다 기록이다.

시카고 시장 해리슨은 한 달간 170개의 극장·홀·교회당을 폐쇄한 다음 소방시설 점검에 들어갔고 소방법도 개정했다. 비상구는 안에서 밀면 바깥으로 열리도록 바꿨고, 극장 안에서 불을 끄더라도 비상구 표시등은 끄지 않도록 했다. 방화 커튼도 철제로 교체했다. 극장 스태프에게 소방훈련도 실시했다.

오늘날과 같은 소방법이 제정된 것도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재 등 비상시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는 충분한 비상구 확보가 극장에 필수사항이 된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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