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는 얼굴만 봐도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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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과학 영재들은 사람의 옆모습을 본 대로 그리는 비율이 높다. 그래서 눈이 옆얼굴 윤곽선에 바짝 붙어 그려져 있고, 입술도 본 대로 인중이 없이 작게 그린다(왼쪽 그림). 그러나 일반 학생들은 관념적인 눈 모양인 정면에서 본 모양으로 그린다(오른쪽 그림).

과학의 천재인 아이작 뉴턴의 얼굴은 왼쪽 이마 윗부분과 오른쪽 이마 아랫부분이 도드라져 있다. 광대뼈 바로 안쪽 부위의 뺨도 왼쪽이 더 볼록하다. 음악의 천재인 베토벤 역시 왼쪽 이마가 오른쪽에 비해 더 볼록하다. 죽은 직후 얼굴에 석고를 부어 떠낸 데드마스크를 등고선 촬영한 사진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등고선 촬영술로 마치 지도의 등고선처럼 얼굴의 높낮이를 기록해 누구나 쉽게 두 얼굴의 3차원 곡면상을 비교할 수 있다.

뉴턴과 베토벤 두 사람은 각각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음악의 천재들 중 하나다. 과학과 예술, 이렇게 전공이 상반된 이들 천재의 얼굴 외형과 감추어져 있는 천재성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영재들의 얼굴과는 어떤 공통점이 나타날까.

한서대 부설 얼굴연구소의 조용진 교수는 영재의 조기 발굴에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기 위해 세계 천재들의 얼굴과 우리나라 초등생 과학 영재들의 얼굴과 두상을 조사했다.

조사 대상은 세계적인 천재들의 경우 데드마스크를, 우리나라 학생들은 서울교육대 과학영재교육센터에 재학 중인 과학영재반 아동(4~6학년 221명)과 서울 강남 및 충청북도의 초등학교 일반 학생(5, 6학년 222명)들을 비교 군으로 조사해 분석했다.

조교수는 "모든 방면의 천재들 사이에는 전공이 달라도 얼굴에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과학영재아들도 그렇다"며 "이는 뇌 쓰기 방식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뇌의 모양과 크기는 두상에 잘 나타나는데, 특히 얼굴은 뇌의 어느 부위를 잘 쓰는지가 그대로 나타나는 일종의 전광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턴이나 베토벤의 왼쪽 이마가 더 도드라진 것은 대뇌의 앞 부분인 전두엽 중 왼쪽 부분이 더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뇌에서 이 부분은 생각을 깊이 하고 언어나 수리를 동원해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개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숙고형 사람들에서 이 부분이 도드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1906년부터 유명인이 죽은 후 뇌를 꺼내 보관해 왔는데, 과학자뿐 아니라 작곡가. 연주가.철학자의 구별 없이 이들 대부분이 왼쪽 뇌가 큰 것이 공통점이다.

초등생 과학 영재들은 일반 아동에 비해 머리가 큰 것이 특징이다. 머리가 큰 것은 얼굴이 큰 것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머리의 앞뒤 길이와 폭, 그리고 높이를 측정해 짐작할 수 있다. 과학 영재아들은 이 세 항목의 측정치가 모두 큰데, 귓구멍을 중심으로 뒷부분이 큰 뒤짱구가 많다. 짱구 머리가 똑똑하다는 속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닌 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것이다. 미간에서 뒤통수까지의 거리가 184㎜ 이상인 아동은 일반학생이 전체의 42%, 과학영재가 50.5%다.

특히 귓구멍에서 머리꼭지까지의 길이가 일반아보다 8㎜나 높아서, 149㎜ 이상은 일반 학생이 전체의 9.8%에 불과한데 비해 과학 영재는 55%나 된다. 그만큼 과학 영재는 두개골의 용적이 큰 경우가 많고. 당연히 거기에 들어차 있는 뇌 역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학생은 머리가 높으면 머리 앞뒤나 폭이 짧아 결국 전체적인 머리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다.

과학 영재아들은 이마에서도 뉴턴처럼 왼쪽 이마 위쪽과 오른쪽 이마 아래쪽이 엇갈려 도드라진 높낮이를 가진 아동이 많이 나타난다. 뉴턴형 얼굴 높낮이를 가진 얼굴은 일반 아동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얼굴의 좌우 차는 뺨에서도 나타난다. 과학 영재나 일반 아동의 절반 이상이 양쪽 뺨이 대칭을 이루고 있으나, 과학 영재들은 오른쪽 뺨이 더 나온 아동이 일반 아동에 비해 많다. 이는 왼쪽으로 음식을 씹는 습관과 상관이 큰데, 왼쪽 어금니를 쓰면 위턱뼈에 미치는 압력이 대각선 방향으로 반대쪽에 전달돼 오른쪽 위턱뼈가 앞쪽으로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과학 영재 중에는 사고는 왼쪽 뇌로, 음식물 씹기와 같은 일은 오른쪽 뇌로 하는 뇌 쓰기 형이 많음을 의미한다.

조교수는 이런 뇌 쓰기의 차이가 눈 크기의 좌우 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한다. 짝눈인 경우 대개 일반아동들은 오른쪽 눈이 작고 왼쪽 눈이 크다. 과학 영재들은 반대로 왼쪽 눈이 작은 비율이 높게 나타나서, 그 비율이 일반 학생에 비해 10% 정도 높게 나타난다. 과학 영재들의 왼쪽 눈이 작은 것은 오른쪽 뇌의 각성 수준이 높아서 피로하게 되면 대각선 쪽인 왼쪽 눈꺼풀이 처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뇌 쓰기의 좌우 차에서 오는 영향은 턱에서도 나타나는데, 과학 영재는 턱이 기운 방향에서도 일반 학생과 차이가 있다. 일반 아동은 반듯한 턱의 비율이 46%로 높고 오른쪽으로 기운 턱이 많은데 비해 과학 영재들은 10명 중 6.4명 꼴로 턱이 좌우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왼쪽으로 기운 경우가 많다. 이로 보아 과학 영재들이 음식물을 씹을 때는 생각 뇌인 왼쪽을 사용하지 않고 오른쪽을 쓰는, 즉 사고 뇌와 운동 뇌의 역할 분담이 잘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은 범재와 영재는 뇌 용적에서의 차이도 있지만, 뇌 쓰기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뇌의 크기나 모양은 선천성이 강하다. 그러나 시각적인 정보를 이용하는 그림 그리기는 출생 후에 획득되는 면이 강하다. 얼굴 옆모습 그리기와 같은 것에서도 과학 영재아와 일반 학생 간의 차이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림 그리기는 본 모양을 기억했다가 그것을 꺼내는 행동이다. 과학 영재들은 본 것을 본 대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일반 아동은 눈은 동그란 것, 코는 오똑한 것이라는 식으로 언어적으로, 관념적으로 가공된 기억을 꺼내 그리는 것이다. 즉 과학 영재들은 시각정보를 언어나 관념으로 가공하지 않고 원료 그대로 저장했다가 사용할 때 꺼내는 식의 뇌 쓰기를 한다. 그래서 과학 영재의 경우 옆얼굴을 그리라는 주문에 눈을 윤곽선에 바짝 붙여 그리는 반면 일반 학생은 앞에서 본 타원형 눈의 모양을 그리는 비율이 높다.

조용진 교수는 "체질인류학적으로 나타난 과학 영재의 이런 특징이 아주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며 "그러나 과학 영재에 대한 관심을 높여서 어느 정도라도 과학 영재의 조기 발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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