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장 같은 사직구장, “가르시아다” 할렐루야♪…“박기혁이다” ㄱ자 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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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전에서 롯데 팬들이 신문지를 찢어 들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지난달 27일 롯데와 한화의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진 부산 사직구장. 3회 롯데의 6번 타자 카림 가르시아의 타구가 외야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2만3000여 명의 관중은 일제히 용수철처럼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롯데가 6-3으로 경기를 뒤집자 경기장의 분위기도 뒤집어졌다.

관중석 앞·뒤·옆자리 누구와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싸안고 눈물까지 흘리는 팬들의 모습은 2002년 월드컵 축구 때의 거리 응원과 흡사했다. 그들이 목이 터져라 합창하는 노래가 ‘오 필승 코리아’가 아니라 ‘부산 갈매기’라는 점, 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가 축구가 아니라 야구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부산은 요즘 축제 중이다. 연고팀 롯데의 성적이 선두권으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사직구장은 마치 개신교 교회의 거대한 부흥회장처럼 열기가 넘친다. 화끈한 부산 사람들이 부르는 부산 갈매기는 사직야구장의 벽을 넘어 광안리 바닷가에까지 메아리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만원 지하철에서도, 남포동 술집에서도 오직 롯데 야구만이 화제다.

올해 부산엔 ‘가을에도 야구하자(플레이오프에 올라가자)’는 8년 묵은 꿈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다. 부산 사람들에게 올해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2002년의 거스 히딩크다. 사직구장에서 만난 임근식(38)씨는 2루타를 친 김주찬을 보고 “작년에는 만날 삼진 먹드마 올해는 방맹이 시원하이 휘두르는데, 이게 다 로 감독(로이스터) 덕분 아이가”라고 말했다.

사직구장의 야구 무대는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지만 축제의 무대는 관중석이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장이 있는 1루 측 내야석이 명당인데 경기 시작 4시간30분 전인 오후 2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롯데가 공격할 때 이곳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없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온 윤철환(37)씨는 “올 때마다 정말 재미있다. 여기는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 보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놀면 된다”고 말했다.

관중은 유격수인 박기혁이 타석에 들어서면 엉덩이를 쭉 빼고 양손을 내밀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일명 기역자(ㄱ)춤. 박기혁의 이름이 기역과 비슷하게 발음된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롯데의 마케팅팀과 응원단은 주요 선수를 위한 주제가를 만들었는데 가무를 즐기는 부산 팬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됐다. 요즘 롯데의 최고 스타인 카림 가르시아는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주제곡으로 쓴다. 관중은 성가대처럼 즐겁게 이 노래를 부른다. 사직 관중들은 신문으로 응원용 수술을 만들고 쓰레기 수거 봉지로도 모자를 만든다.

경기가 끝나면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 도심의 거리 응원처럼 사직 경기장 밖에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넥타이를 맨 30대 직장인들, 뾰족구두를 신은 20대 여성들, 60대 할아버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선수들의 개인 응원가를 차례로 부른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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