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민주당 ‘재협상 촉구 결의안’도 수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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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3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쇠고기 파문 등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한나라당이 쇠고기 파문에 긴급 ‘처방전’을 내놨다.

미국과 사실상의 재협상에 나서기로 하고 공개 행보를 시작했다. 3일 오전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회의의 결론이었다. 당정회의 직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요청했으며 미국 측의 답신이 올 때까지 고시를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일 촛불시위를 통해 요구해 온 민심에 고집을 꺾고 고개를 숙인 셈이다.

발표 창구는 정부였지만 이런 해법을 밀어붙인 건 한나라당 쪽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날 당정회의에선 한나라당 지도부의 센 발언이 이어졌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잘못한 사람을 끌고 가려 해선 안 된다. 책임지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며 한승수 국무총리와 류우익 대통령실장 면전에서 인적 쇄신을 주장했다. 비공개 회의에선 강재섭 대표가 정운천 장관에게 “농수산 관련 장관이 어떻게 농작물 자라는 속도보다 정무적 감각이 자라지 않느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신속한 의견 조율과 긴밀한 논의 구조를 갖기 위해 앞으로 당·정·청 회의를 주 1회 정례화한다”고 정부 측에 통보했다.

당 관계자는 “출범 100일 동안 지켜본 정부에 대한 불만이 당내에 팽배하다”며 “집권당이 국정 운영을 주도해 내각을 끌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고 말했다.

사실상 재협상 카드를 꺼낸 것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부는 ‘재협상 불가’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재협상은 해법이 아니다’는 쪽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대규모 집회 이후 조금씩 기류가 변했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재협상 불가 방침이) 확고했다”며 “주말에 단계적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고시 연기-사실상의 재협상 요구’라는 해법이 마련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재협상 요구가 터져 나온 게 기류 변화를 이끈 한 요인이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국제 관례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 차원의 재협상 요구 대열에 합류키로 했다. 특히 야당이 요구해 온 재협상 촉구 결의안 논의에 동참 결정을 내렸다. 조윤선 대변인은 “국회 차원에서 여야가 함께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외 투쟁을 벌이고 있는 야당을 국회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복안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재협상 방침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재협상 카드까지 던졌는데도 시위가 확대되거나 야당의 협조를 못 이끌어낼 경우 사실상 더 쓸 카드도 없다”고 토로했다.

◇야당, “대통령이 재협상 약속하라”=통합민주당은 장외 투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손학규 대표는 “내일 재·보선이 있으니까 우선 눈가림하는 것”이라며 “당정 협의까지 해놓고 내놓는다는 게 국민에게 또 하나의 의혹만 주고 있다”고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정부와 한나라당이 서로 짜고 쇼하고 있다”며 “소나기를 피하겠다는 식의 응급처방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어 “실효성 없는 수출 중지 요청으론 국민의 재협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재협상을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이날 오후 인천 부평역에서 열린 장외 집회에서 “대통령이 5일 개원 연설에서 재협상을 하겠다고 분명히 밝힌다면 국회에 들어가 모든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강현·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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