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정치권 닭쫓던 개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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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권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운명에 처했다.헌법재판소가 5.18내란죄에 대해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사람을 제외하고는 공소시효 만료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져서다.각 정당이 5.18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보여준 한편의 소극(笑劇)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따지고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중 누구도 80년5월 광주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특히 민주화세력의 한 축을 자처하다 3당합당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 현재의 집권당은 더욱 그렇다.문민정부 초반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도 5.18문 제에 대해서만은 유독 침묵해왔던 것도 그래서라고 보여진다.집권당은 이 「역사적 사안」을 어느날 갑자기 「한다면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였다.헌재 결정이란 벽에 부닥치자 집권당은 당황하고 있다.치밀한 사전검증이 없었다는 방증이다.앞으로 정부나 여당이 어떤 정책을 내놓을때 국민들의 불신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어떤가.대책없이 밀어붙이는데 있어 예외가 아니다.지난해 통합민주당 시절 12.12기소촉구를 위한 장외투쟁을 말리던그 지도자가 여당이 법 제정을 한다고 하자 장외투쟁에 나서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있다.
뿐만 아니다.이 지도자는 동일한 사안을 놓고 입장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진상은 규명하되 처벌은 말자』며 사면을 운운하더니 『관련자 전원을 엄중처단하라』로 변모했다.또다른 야당의 모습은 더욱 한심하다.5.16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그 때 그사람이자기문제는 제쳐놓고 5.17을 처벌하자는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별법제정이 위헌이 되는지,소급입법이 되는지 따져본 정당이 없다.쿠데타라는 헌법파괴행위를 정죄키 위해 또다시 헌법을 파괴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권의 이 모든 모습을 설명하는 말은 「정치인은 표를 먹고산다」는 한마디밖에 없다.정치권이 표 계산으로 문제를 처리하려니 이런 해프닝이 나오는 것이다.이제라도 원칙이 무엇이고 법이무엇이냐를 다시 생각해 「내일에 가서 부정되지 않을 역사」를 만드는 일에 나설 때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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