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실버] “7년 만의 일터 … 사막이 내겐 희망 샘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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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건설 현장의 총책임자로 재취업한 정유암(56)씨.

국내 기업들이 재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이다. 그런 가운데 앞서가는 기업들이 있다. 국내 굴지의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은 58세 정년 퇴직자를 촉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건설관리업 전문인 한미파슨스는 베테랑 해외 건설 전문인들을 재고용한다. 기업은행은 지점장 출신만 모아 ‘컨설턴트’로 활용하고 있다. 재취업 제도는 다시 일하는 은퇴자는 물론이고 채택한 기업들도 만족하고 있다.

정유암. 올해 56세. 그는 건설 공정 관리 업체인 한미파슨스의 전문기술자다. 직장을 잃은 지 만 7년. 그가 올해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섰다.

사우디 현장은 젊은 시절이었던 70년대에 이어 두 번째. 새 현장은 사우디 리야드시에 있는 국가연금 공단 건물 신축 공사장이다. 50대 후반의 나이로는 공정관리 총책 일이 벅차다.

그는 열사(熱沙)의 건설 현장에서 ‘희망의 편지’를 쓴다. “지난 세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략) 직장을 그만둔 백수에게 세상은 참으로 힘들고 냉정한 곳이었다.” 마지못해 그가 택한 것이 뉴질랜드 이민.

“뉴질랜드에 이민 가 있던 나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인터넷에 뜬 광고가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대한민국의 50~60대여, 해외 현장으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해외 현장이라면 자신이 넘치는 그는 곧장 이력서를 내고 서울로 가 면접에 응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직장생활은 총 23년. 인하공대를 졸업, 계열사인 한진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마살이 끼어서인가. 걸핏하면 해외 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80년대 3차례(한진개발), 90년대 3차례(SK건설) 모두 10년을 가족과 떨어져 일했다.

참다 못해 88년 SK 건설로 옮겼다. 그런데 또 해외근무 발령이었다. 외환위기를 넘기고 2001년에 접어들면서 문득 정년퇴직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표를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열사의 현장에서 쓰는 ‘희망의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불모의 사막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남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장소다.”

김종훈(59). 한미파슨스를 이끌어가는 CEO다. 전문 분야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건설 발주에서 준공까지 깐깐한 시어머니 역할을 한다. “정년 이후 일손을 놓는 것은 국가 경제 측면에서 큰 손실이다. 앞으로 고령 은퇴자의 재고용을 계속 확대할 작정이다.” 그는 올 들어 은퇴 전문 기술인 3명을 공채했다. 정유암 이사 말고 나머지 2명도 해외 현장 파견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두석 객원기자(leeds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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