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프라이드 ③ 배영수가 명심해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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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광주구장에서 KIA 서재응을 만났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웃는 얼굴에 씩씩한 말투, 자신 있는 표정…. 별명이 왜 ‘나이스 가이’인지 만나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는 현재 오른 허벅지 통증이 재발돼 재활치료 중이다.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죠. 기다리는 데는 이골이 났습니다”며 씩 웃었다. 서재응만큼 ‘기다린’ 선수도 드물다. 1997년 말 뉴욕 메츠에 입단했지만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3년 4월이었다. 99년 5월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고 만 2년 동안 재활에 매달리느라 늦었다. 보통 1년 반 정도 걸리지만 그는 통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사이 조진호(보스턴)·김병현(애리조나)·이상훈(보스턴)·김선우(몬트리올)·최희섭(컵스) 등 자신보다 늦게 입단한 선후배들은 빅리그를 밟았다. 그들이 박수를 받을 동안 서재응은 눈물을 삼켰다.

동료들의 빅리그 진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조바심이 났지만 그는 팔꿈치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고 2003~2004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돌아와 성공적인 투구를 했다. 엄연한 사실은 그때의 인내 덕분에 지금도 그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재응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부위 수술을 받은 선수가 있다. 요미우리 조성민이다. 99년 4월 수술을 받았는데 서재응과 달리 완치가 덜 된 상태에서 2000년 5월 복귀했다. 잠깐 반짝하나 싶더니 2001년 6월 다시 수술대에 올랐고 결국 2002년 10월 요미우리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무릎을 꿇고 복귀를 서두른 게 선수 생명을 단축하는 화를 부른 것이다.

두 선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삼성 배영수 때문이다. 배영수도 지난해 1월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았다. 그런데 조성민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배영수는 올 3월 초 복귀했다. 하지만 수술 부위가 완쾌되지 않아 지금도 통증이 있고 등판한 다음날에는 팔이 퉁퉁 부어 오른다. “수술 때 제거한 뼛조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는데 너무 의욕이 앞선 탓에 서둘러 공을 잡은 감이 없지 않다. 팔팔한 나이에 1년여를 통째로 쉬었으니 얼마나 마운드가 그리웠을까.

하지만 배영수의 나이 이제 몇 살인가. 스물일곱이다. 올 시즌을 또다시 통째로 잃는다고 하더라도 팔만 온전하다면 앞으로 훨씬 많은 시즌을 더 던질 수 있다. 지금 그가 신경 쓸 것은 팀 성적도, 재기하는 모습도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증을 완전히 없애고 부상을 완치하는 것이다. 지난 4월 LA에서 만난 박찬호는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1년을 꼬박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경기는 짧지만 한 시즌은 길다. 야구인생은 더 길다”고.

이석희 야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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