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墳'관습 남서지방에 남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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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바람 이불처럼 덮고/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 다오'(황동규 '풍장' 중에서)

시신을 땅에 묻지 않는 풍장(風葬)과 유사한 전통 장례 형식이 초분(草墳.사진)이다. 관을 매장하지 않고 돌이나 통나무 위에 얹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형태로 지붕을 덮는다. 일종의 임시 무덤이다. 2~3년 후 남은 뼈를 수거해 깨끗이 씻은 뒤 매장한다.

이 같은 초분 관습이 지금도 남서 해안지방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이를 최초로 종합 조사한 뒤 최근 '한국의 초분'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초분 관행의 원형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확인된다. 수서(隋書)의 고려(고구려)편에는 "집안에 죽은 자를 가매장(殯)하고 3년이 지나면 길일을 택해 장례를 치른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식 장례 전에 가매장하는 풍습이 전래됐다는 것이다.

초분 관습은 일제시대에 '위생법'이 제정되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후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초분을 행정적으로 금지하면서 도서지방 등에만 남게 됐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가난해 장지를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초분을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국립민속박물관 정종수 민속연구과장은 "장례를 두번 치르는 격이라 비용이 많이 들어 효성이 지극하거나 부자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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