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녹음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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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20일 오후10시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대강당.두꺼운 외투차림의 연주자들이 밤샘 각오를 단단히 한듯 간식과 커피병까지들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올해초부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 레코딩의 대장정에 돌입한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 라(RNO)단원들은 오전 5시까지 계속된 막바지 심야녹음에 들어갔다.
바로 전날 이곳에서 열린 창단 5주년 기념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지만 레코딩 프로듀서와 지휘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NG를 연발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문화적 상징」「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최초의 독립교향악단」으로 불리는 단원103명의 RNO는 90년신예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노프(38)가 창단한 오케스트라.러시아에서 전속계약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몇안되는 예 술단체중 하나다. 「오케스트라는 사회구조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듯 RNO는 러시아 변혁의 상징적 산물이다.
유고태생의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예술고문을 맡고 있는RNO운영위원회는 공산당이나 KGB의 간섭에 시달려온 기존의 국영 오케스트라와 달리 객원지휘자.연주일정.레코딩.레퍼토리등을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하고 있다.
RNO는 이처럼 모스크바에 부는 자유와 개방의 바람을 타고 러시아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마땅한 연주장소를 구하기 힘들어 모스크바음악원 대강당에서 정기연주회와 레코딩을 하고 있지만 연주회마다 암표상까지 등장하는매진 광경 이 벌어진다.
창단 당시 국립오케스트라의 상임직을 버리고 새 악단에 합류한사람도 있었고 바이올린 파트엔 악장급 주자들이 6명이나 포함돼있다. 92년 고르바초프가 중심이 돼 창설한 「러시아 예술재단」의 지원대상 제1호로 선정될 정도로 예술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옐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과 전속계약한 RNO에 축하친서를 보내 『러시아 문화의 재탄생 을 알리는 빛나는 상징』이라고 칭송한데 이어 지휘자 플레트노프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했다.RNO의 매니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현재아모코.세브론등 미국.영국의 대기업과 독일.일본인들로 구성된 후원회의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스크바 크레야코프 미술관에서의 연주회,밸런타인데이 특별연주회를 시도하는 한편 호텔등 편의시설을 갖춘 전용 콘서트홀을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옐친정부는 크렘린 광장 맞은편의 대지를 RNO에 무상으로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7일 완료되는 RNO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곡 레코딩은 내년 10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출시되며,내년 5월 내한공연 일정이 잡혀있다.이어 8월엔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공연에도 참가한다.
모스크바=이장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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