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을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4호 08면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해리슨 포드·샤이어 라버프·케이트 블란쳇 상영시간 121분 개봉 5월 22일 제작연도 2008

1981년 ‘레이더스’로 시작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84년 ‘인디아나 존스: 죽음의 사원’, 89년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 이어 무려 19년 만에 네 번째 작품으로 돌아왔다. 제목도 그간의 영화보다 더욱 길어진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이후 ‘해골의 왕국’)이다.

나이가 들어도 팔팔하기 그지없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앞에 어느 날 머트(샤이어 라버프)라는 이름의 웬 오토바이 양아치가 나타나 고고학자 옥슬리가 고대 남미 전설 속 크리스탈 해골을 찾았다가 정체불명의 집단에 붙잡혀 갔단 소식을 전한다. 머트가 전한 각종 단서들 속에서 고대 마야문명의 비밀을 발견한 존스, 그 길로 곧장 페루 어딘가에 존재하는 황금 도시를 찾아 비행기에 오른다.

쏟아지는 IT 문명에 너무 많이 길들여진 당신이라면 이 영화의 진맛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관객들 마음 한편에 오랜 시간 봉인돼 있던 ‘오래된 것들의 기억’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영화 속 드라마 역시 19년의 시간이 흐른 1957년, 세월은 지나고 또 지나 어느덧 전편 내내 존스를 괴롭히던 나치 세력은 사라지고 이리나 스팔코(케이트 블란쳇)가 진두지휘하는 옛 소비에트 첩보부대원들이 등장하지만, 인디아나 존스의 그 구닥다리 패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심지어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그 놈의 가죽 채찍까지도. 게다가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존스의 유행 감각은 이 시리즈가 ‘레이더스’ 시절부터 추구했던 이른바 ‘아날로그 액션 어드벤처’에 고집스러운 방점까지 찍으려 하니, 이쯤에서 디지털 액션이니 CG 판타지니 그런 소리 들먹였다간 오히려 촌스럽단 소리 듣기 십상이다.

존스가 스팔코 부대에 납치되어 군부대 안에 내팽개쳐진 몇 분 후, 어디든 기어 올라가고 어디든 날아다니는 액션이 시작될 무렵, 과연 “빰빠밤빠~빰빠바~ 빰빠밤빠~빰빠밤빰빠”, 그 유명한 레이더스 마치(The Raiders March), 걸물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새롭게 편곡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주제가가 흘러나오며 이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군사 기밀창고 내 너저분한 환경에서의 탈출 액션, 시내 비좁은 도로와 도서관 내부로까지 이어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추격전, 남미 정글을 자동차로 달리며 이어지는 총격전에 수천만 개미 군단의 습격, 이른바 어드벤처형 액션들의 연속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말이 되는 것들일까. 아니다. 어느 것 하나 현실에서 가능한 장면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거짓말’이다. 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주제와 표현 방식은 몽땅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우린 인디아나 존스에 환호한다. 그를 향해 수천 발 총알을 난사해 봤자 한 발도 맞지 않는 이 이상한 영웅을 향해 얼마든지 응원의 환호성을 보내준다.

인디아나 존스가 보여주는 초현실적 영웅성은 순전히 거짓말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뻥을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지.” ‘영웅’을 보고 나오며 했던 말이다. ‘제대로 뻥친 영화의 카리스마’, ‘해골의 왕국’ 안에 그것이 있다.

존스식 거짓말 액션의 ‘탈현실화’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롭게 각인시킨다. 나치에서 소비에트 특수부대까지 그동안 존스가 맞닥뜨린 당대의 적수들은 모두가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무리들이었지만, 이 시리즈 속에서 그것들엔 아무런 정치적 함의가 없다.

‘레이더스’를 만들 당시, 그러니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구상하던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영화들이 007 시리즈에 버금가는 매력을 보여주길 누구보다 염원하고 있었다. 007 시리즈의 매력, 그건 시대적 정황보다 언제나 한 수 위에 있던 제임스 본드가 장면 장면마다 보여주던 신나고 통쾌한 액션 활극의 매력, 그것이었다.

‘해골의 왕국’에 등장한 소비에트 특수부대 역시 이 같은 007식 액션 속 정치적 존재들의 주변성으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존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그들과 싸우고 또 싸우지만, 그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이유는 순전히 존스의 액션을 빛내주기 위해서다. 거기서 정치적 목적은 사라지고,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순진무결한 매력과 황당무계 액션 영웅의 낭만주의가 부상한다.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핵 폭발의 위험이 지구인들을 불안케 했던 냉전의 시대? 책에서나 읽었을 소리다. 탈정치성으로부터 초자연적인 영웅을 만들어내 그의 통쾌하고 유머 넘치는 액션으로부터 지구 멸망 따윈 염려할 필요도 없다는 극도의 안도감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그 ‘인디아나 존스 로맨티시즘’이 이 영화에 스며 있는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시각효과회사 ILM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해골의 왕국’은 가능한 한 아날로그 액션 속에서 1942년생 해리슨 포드와 고대 전설의 멋들어진 대결을 보여주는 영화다. 게다가 끝을 향해 다가갈수록 그야말로 ‘뻥 영화’의 진수가 펼쳐지니, 그 거대한 거짓말의 바다를 만드는 데 인디아니 존스 4편의 임무는 완결되었다 할 수 있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