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어릴 적 부모 잃은 나를 살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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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요.”

박희영(23·대교)은 여자 축구대표팀의 간판 골잡이다. 28번의 A매치에서 17골을 터뜨리며 현 대표팀 공격수 가운데 최다골을 기록 중이다. 출중한 축구 실력 못지않게 곱상한 외모로 팬들의 인기가 높다.

그는 요즘 푸른 하늘을 사랑한다고 했다. 전에는 원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정겨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그리운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활짝 웃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절로 신이 난다고 했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그는 광부 집안의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해 집안 어른들에게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버지는 채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막내딸의 재롱에 하루의 피로를 풀었고, 어머니도 달리기에 소질을 보인 딸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태백 통리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행복했던 가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지여중 2년 때에는 어머니를 잃고 술에 의지하며 살던 아버지마저 어머니 곁으로 갔다.

3년 사이에 부모를 모두 잃은 박희영은 이제 정붙일 곳이 사라졌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부모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그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우연한 기회에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 함께 한 축구였다. 마음속 울분을 축구공에 흘려 버리고 나면 희열이 느껴졌다. 이렇게 그는 축구와 인연을 맺어 갔고, 어느 날 동네에서 아저씨들과 재미 삼아 한 축구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게 된다.

물 흐르듯 유연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킥력, 아저씨 팀 가운데 박희영의 축구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강원도 축구협회 직원이었다. 경기 후 직원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녀석, 정말 볼을 감각적으로 잘 차는구나”라며 칭찬했다. 남자로 착각한 것이다. 주위에서 “여자인데요”라고 하자 협회 직원은 깜짝 놀랐다. 이어 축구부가 있는 강릉 경포여중으로 전학을 주선했다.

박희영은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원을 받는 동료들을 보면 마음 한편에서 부러운 마음에 울컥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운동장 한구석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많이 쏟았다. 말수가 줄어들고 사소한 농담에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축구부를 뛰쳐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강일여고에 진학했고, 어느 날 문득 “나의 이런 모습을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좋아하실까”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자고 다짐했고, 독기를 품고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렸다.

이후 그는 동물적인 골 감각으로 여왕기, 청학기 등 고교대회 득점왕을 휩쓸며 팀을 고교 최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영진전문대를 거쳐 대교에 입단한 그는 힘과 스피드까지 붙으면서 2005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안정된 플레이로 대표팀 붙박이 자리를 굳힌 그는 29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일본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역전골과 쐐기골 등 2골을 터뜨리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축구는 나를 살린 은인”이라며 “여자선수 가운데 최초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 가입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호찌민=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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