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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가요로 되돌아본 '서울~ 서울~ 서울'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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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성장과 경쟁의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서울 도심의 빌딩숲. 이곳에 사과나무를 심을 마음의 여유를 우리가 누릴 수 있을까. 1960년대만 해도 서울은 녹지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중앙포토]

광화문 연가
이영미 지음, 예담, 316쪽, 1만3000원

 국민가수 패티 김과 조용필이 각각 데뷔 50주년과 40주년을 맞았다. 재미난 사실 하나. ‘서울의 찬가’(패티 김)와 ‘서울 서울 서울’(조용필), 최근 잇따라 열린 그들의 데뷔기념 공연에서 ‘서울’이 빠지지 않았다.

본지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연재 중인 패티 김은 ‘서울의 찬가’를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았다. 1960년대 후반 현대도시로 발전한 서울의 희망을 담은 곡을 만들어달라는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의 부탁을 받고 패티 김의 남편 길옥윤씨가 작곡했다고 한다. “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서울 서울 서울’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88년 발매된 조용필 10집에 실렸다. 당시 군대 훈련병이었던 기자가 연병장에서 불렀던 게 기억난다. 교관들이 ‘사제’(私製) 노래를 하나 가르쳐주겠다며 고른 곡이다.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이라는 가사가 ‘제2의 고향’ 서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조금 따져보자. 60년대 후반 서울이 그토록 아름다웠을까. 산업화 드라이브, 숨가쁜 도시화를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갔던 곳 또한 서울이었다. ‘서울의 찬가’가 나온 이듬해인 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선 전태일이란 한 청년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서울이란 ‘동전’은 그렇게 앞과 뒤가 다르기도 했다.

80년대 서울은 또한 많은 이에게 팍팍하기만 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이용의 ‘서울’)가 흘러나왔지만 대도시의 고단함은 여전했다. 정태춘은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북한강’에서)라고 읊조렸다.

또 80년대는 대중가요에 ‘지는 강북’ ‘뜨는 강남’이 본격 등장했다. 특히 욕망과 유혹의 강남이 부각됐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아, 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봐”(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아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등이 유행했다.

이 책은 대중가요사에 나타난 서울의 이야기다.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를 냈던 이영미씨가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노래라는 프리즘으로 서울을 들여다보았다. 서울에 대한, 서울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에 대한 일종의 문화읽기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미시사’의 한 예다.

책은 쉽고도 흥미롭다. 가장 친숙한 장르인 노래로 서울의 속살을 켜켜이 뜯어본다.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 근대화, 민주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선진화 등 ‘앞으로 앞으로’ 달려온 우리의 자화상을 꺼내 보인다. 종로·한강·서울역·김포공항·영동·압구정동·영등포·명동의 변천사가 소개되고, 엿장수· 모던 걸·공돌이·먹고 대학생도 등장한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환상, 근대 산업문명의 그늘, 경쟁과 승자 독식에 대한 성찰 등 제법 묵직한 메시지도 끼어든다. 이쯤 되면 대중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아는 곡이 나오면 콧노래도 절로 터진다.

책을 읽다가 폭소를 터뜨린 대목 하나. ‘국제화’는 이미 30년대에 완수(?)됐다. 외국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강박의식이 드러난다. “모시모시, 아 모시모시 (…) 저응 저응 아리 러브 유 (…) 아이고 망칙해라 아이 돈 노우 빠이빠이.”(김해송·박향림의 ‘전화일기’). 한국어·일어·영어 세 나라 말이 뒤섞여 있다. 요즘 젊은 가수들의 ‘국적 불명’ 노래는 유가 아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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