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스타’는 음악자체를 즐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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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천재에서 거장으로 발돋움하고있는 예브게니 키신<左>과 윤디 리.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않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한다.

#1983년 모스크바. 곱슬곱슬한 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12세 소년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팔을 쭉 뻗은 뻣뻣한 자세로 쇼팽의 협주곡 두 곡을 완벽하게 연주한 꼬마의 이름은 예브게니 키신.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2000년 바르샤바. 제 14회 쇼팽 국제 콩쿠르의 결과가 발표되자 중국이 떠들썩했다. 18세 피아니스트 윤디 리(李雲迪)가 중국인 최초로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11세 터울의 두 피아니스트는 ‘천재’라는 별칭을 망가뜨리지 않고 잘 자랐다. 키신은 현재 가장 모시기 힘든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윤디 리는 내놓는 음반마다 10만장 이상이 팔리는 슈퍼 스타다. ‘천재’에서 ‘거장’으로의 발돋움하고 있는 이들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스트레스 없이 음악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며 “주위의 좋은 조력자들이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라고 들려주었다.

◇‘맞춤형’ 연주 자세를 가르친 스승=“인터뷰에 10분 이상이 필요하다면 세 시간쯤 후에 했으면 한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이 서른 일곱의 천재는 기자의 첫 전화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세시간 후의 통화에서 키신은 “모차르트를 연습 중이었는데 집중이 잘 안돼 인터뷰하기가 곤란했다”고 말했다. 오는 9월 베토벤 협주곡 전곡(5곡) 앨범을 내놓는 키신은 다음 앨범으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준비 중이다.

“어렸을 때 했던 음악이 훨씬 쉬웠다”는 키신은 “요즘엔 연주할 때마다 내가 좀 더 나은 음악을 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은 음악회에 서지 않게 조절해 준 부모님과 선생님의 역할에 특히 감사했다. “나는 유난히 팔이 길다. 내 선생님인 안나 칸토르는 내게 딱 맞는 운지법을 권해줬다. 지금의 특이한 연주 자세가 나온 이유다. 덕분에 손만이 아닌 몸의 힘을 이용해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다.”

구소련의 영재양성 노력도 키신을 세계 무대에 세우는 동력이었다. 키신은 “내가 6세에 시작한 영재 교육기관 그네신 음대 예비학교는 다른 무엇에도 신경쓰지 않고 피아노만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기억했다.

2년 전 처음 내한했던 키신은 당시 30번의 커튼콜과 10곡의 앙코르 연주를 기록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청중을 만났다”고 당시를 기억하며 “내년에 다시 내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담한 꿈을 이해한 부모=윤디 리(26)는 클래식 음악에서 중국의 파워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쓰촨(四川)성 충칭(重慶)의 철강 공장 노동자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당시만해도 중국인이 피아노로 세계 무대를 장악하는 상상을 아무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연주를 위해 뮌헨에 머물고 있는 그는 “직업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부모님은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내 희망을 이해해주셨다”고 말했다. 윤디 리의 부모는 광둥(廣東)성의 심천(深)으로 이사를 했고 그는 좀 더 개방된 환경에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

“요즘엔 중국에서 후배 피아니스트들과 만나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 놀랍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발전하고 있다.”

윤디 리는 “이제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학위를 모두 마쳐 더이상 학생이 아니다”라며 “중국 음악계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카페에서 5000명 이상의 한국 팬을 모은 윤디 리는 6월 25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에서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함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윤디 리가 “피아니스트로서 이루고 싶은 것을 느끼게 한 곡”이라고 말한 작품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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