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한승, 현역·면제 걸린 후지쓰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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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쏠리는 주위의 눈길이 부담스럽기만 한 조한승 9단. 그래도 이번만은 2%를 꽉 채워 승리를 거두고 싶다. [사이버오로 제공]

조한승 9단은 요즘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5월 들어 2승4패. 한국리그에선 팀(티브로드)의 에이스답지 않게 2전2패고 LG배 세계기왕전에서는 1승을 거둔 뒤 중국의 창하오에게 져 탈락했다. 바둑 내용도 많이 굳어 있었다.

조한승 9단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인 바둑을 둔다. 이런 그의 바둑을 두고 ‘품질에선 최고’라는 평가가 쏟아지곤 했다. 이세돌 9단의 뒤를 쫓고 있는 신세대 강자 강동윤 7단은 ‘누가 이 시대 최고수냐’라는 질문에 ‘조한승 9단’이라 대답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런 조한승이 왜 요즘 심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그의 모든 시선이 일주일 후(6월7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후지쓰배에 가 있기 때문이다.

조한승은 올 8월 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이번 후지쓰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하면 병역이 면제된다. 말하자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8강전 상대는 중국의 류싱 8단. 쟁쟁한 얼굴들을 피했으니 좋은 대진운이구나 싶지만 류싱도 중국에서 최근 우승컵을 따낸 강력한 신흥세력이라서 승부는 5대5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승리하면 최후의 관문이라 할 준결승을 맞게 되는데 상대는 이창호 9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8강전 대진은 이세돌 9단 대 구리 9단, 박영훈 9단 대 창하오 9단, 이창호 9단 대 요다 9단. 대진표에서 조한승 바로 옆이 이창호다. 준결승은 7월 5일 도쿄에서 열린다).

병역법 시행령은 ‘국위 선양’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프로기사가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그 대회는 ‘응씨배, 후지쓰배, 동양증권배 우승 또는 준우승자’로 명시돼 있다. 1994년 국회의원 100여 명과 병무청이 국보 기사 이창호 9단의 병역 면제를 위해 힘을 모은 끝에 법이 시행되었고 95년 이창호 9단이 첫 혜택을 받았다. 이후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 박정상 9단, 송태곤 8단이 면제 대상에 들었다(한국기원은 이미 없어진 동양증권배 대신 삼성화재배와 LG배를 첨가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나 아직 성과는 없다).

조한승 9단은 한국랭킹 5위. 정상을 코앞에 두고 밀고 밀리며 치열하게 싸우는 중인데 이 시점에서의 군 입대는 경쟁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더구나 같은 또래나 후배 라이벌들은 대개 면제를 받은 터라 조한승은 한층 속이 타고 있다. 바둑 스타일처럼 성격도 부드럽고 넉넉해서 선배든 후배든 모두 좋아한다. 그러나 이 같은 낙천성 때문에 그는 역전을 자주 허용한다. ‘조한승=2% 부족’이란 등식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수의 기품(棋品)을 지녔으면서도 마지막 한 모금의 독기가 부족해 정상 등정에 실패하곤 했던 조한승이 이번 후지쓰배에선 그 2%를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한승은 30일 베이징으로 가 1일 시작되는 TV아시아선수권 한국대표로 시합을 치른 뒤 이어서 7일의 후지쓰배 8강전에 나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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