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재발견/우리동네 걷기] 동대문~광희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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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패션에서 소설 초판본까지

동대문 패션타운은 가장 ‘서울스러운’ 장소 중 하나다. 늘 사람으로 넘쳐난다. 주말 오후면 행렬을 하듯 천천히 줄을 맞춰 걸어야 할 정도다. 인파는 밤에도 줄지 않는다. 오전 4시30분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게 보통이다.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 14번 출구로 나와 천천히 걷다 보면 헬로에이피엠·밀리오레·두산타워 등 대형 쇼핑몰이 차례로 보인다. 밀리오레 건너편 동대문축구장은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야구장은 이미 철거가 끝났다. 2010년까지 디자인 플라자&파크(DDP)를 조성할 계획이다. 아직도 곳곳에 철거에 반대하는 플래카드와 낙서 등을 볼 수 있다. 축구장 옆으로는 제일평화시장·덕운상가·광희시장·남평화시장·신평화시장 등 재래시장이 밀집해 있다.

제일평화시장은 1979년 문을 연 이래 줄곧 ‘패션 메카’의 자리를 지켜왔다. 보통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영업을 한다. 대부분 도매장사라 고급 의류를 절반 값에 구입할 수 있다. 1층은 가방과 남녀 의류, 2~3층은 여성복과 캐주얼 의류를 주로 취급한다. 20, 30대의 직장 여성들은 지하 1층 가게를 주로 찾는다. 신평화시장 1층에는 속옷 가게, 동평화시장에는 국내 유명 브랜드의 덤핑매장들이 많다. 광희시장은 가죽 전문 시장으로 유명한 곳. 일본에까지 소문이 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동대문역 8번 출구 방향으로 나가면 동대문종합시장이 나온다. 동대문종합시장은 A·B·C·D동으로 연결돼 있는 거대한 상가다. 대형 쇼핑몰 버금가는 규모다. 식기·주단·커튼·이불 등을 주로 취급한다. 특히 원단은 국내 최대 규모. 혼수를 장만하러 나온 예비 신랑신부들을 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번잡스러움이 싫다면 두산타워에서 흥인지문이나 동대문역 쪽으로 걸어보자. 평창시장이 있는 길 쪽으로 헌책방 거리가 나온다. 패션타운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동대문을 지켜온 유서 깊은 곳이지만 예전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간판도, 서점 외관도 예전에 비해 한결 깔끔하다. 주 고객은 젊은 부부들. 아이들에게 줄 전집 도서를 찾는 경우가 많다. 소설 옛 판본을 찾는 386세대들도 곧잘 눈에 띈다.

주말 오후 나들이를 마무리하려면 동대문종합시장 뒤쪽 먹자골목으로 들어서 보자. 닭 한 마리, 생선구이 집들이 즐비하다. 기본이 20년, 길게는 50년 가까이 동대문을 지켜온 터줏대감들이다. 최근 오래된 지붕을 걷어내고 현대식 아케이드로 정비했다.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동대문 패션타운을 등지고 국립의료원 쪽으로 넘어오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광희동은 서울 속 중앙아시아촌이다. 90년대 후반 러시아·중앙아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동대문 패션타운을 찾아오면서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예전만큼 성황은 아니다. 게다가 광희동 일대가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곧 사라질 운명이다.

중앙아시아촌 산책은 지하철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1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일단 국립의료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쇼핑몰 패션TV를 지나 편의점을 끼고 벌우물길로 들어간다. 10층 규모의 뉴금호타워 간판에 낯선 키릴 문자가 가득하다. 몽골 마트·미용실·항공사…. “몽골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 찍으세요.” 몽골어로 쓰인 사진관 광고 문구도 눈에 띈다. 워낙 몽골 상점이 많다 보니 건물 자체가 ‘몽골타워’로 불린다. 중앙아시아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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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타워’에서 조금 더 걷다가 모아텔 사이로 난 골목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삼송1길과 연결된다. 이쯤부터 중앙아시아의 이국적인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음식점들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이름을 딴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사마르칸트. 강렬한 인상의 빨간색 간판이 인상적이다. 전국에 총 15곳의 사마르칸트가 있는데 광희동에만 세 곳이 모여 있다. 모두 샤 흐리홀 형제들이 운영한다. 메뉴는 야채 칼국수, 물만두, 쇠고기 볶음밥 같은 ‘무난한’ 것부터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양갈비·양고기 꼬치까지 20종. 식사는 보통 5000원, 가장 비싼 음식이 6000~8000원 정도다. 가격 부담 없이 ‘식도락 산책’을 즐기기에 딱 좋다. 이 밖에 우즈베키스탄 제과점 알라또, 러시아 전문 음식점 크라이로드노이 등도 중앙아시아촌의 터줏대감으로 꼽힌다.

중앙아시아촌은 양고기와 같은 이색 음식과 이국적인 거리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물론 삼삼오오 모여 향수를 달래는 중앙아시아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저 편하게 산책만 한다면 40분 정도면 족하다.

글=객원기자 장치선·최경애,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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