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손, 이제야 둥지 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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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거처할 집이 없어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지내온 조선조 마지막 황손 이석(본명 李海錫.63)씨가 전주와 서울에서 '두집 살림'을 하게 됐다.

전주시는 29일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李씨가 전주 李씨의 본향에 정착해 살 수 있도록 최근 3억5000여만원을 들여 시내 완산구 교동 전통 한옥마을에 집 두 채를 사들였다"며 "보수가 끝나는 6월께 입주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주 황손후원회(회장 신일균)도 지난 26일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옛 담배인삼공사 앞 건물에 사무실을 내고 李씨 후원 활동에 들어갔다. 신 회장은 "李씨가 정식으로 입주하기 전까지 전주관광호텔에 묵도록 하는 등 숙식을 돕고 있다 "고 말했다.

李씨는 이에 앞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살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서울시의 제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갑자기 살 집이 두채나 생겼다.

서울시와 전주시가 李씨를 놓고 '모시기 경쟁'을 벌이는 것은 마지막 황손이라는 그의 지명도가 전통문화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李씨가 서울시의 제의를 받아들이자 전주시는 "李씨를 위해 거처와 황실문화 체험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는데 이제 와서 서울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李씨는 "서울시의 제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앞으로 전주를 본거지로 삼겠다"며 "현재 건설 중인 서울 운현궁의 왕실문화 재현 공간이 완공되면 이와 관련한 행사 때만 서울시가 마련해 준 집에서 생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때 대중가수로 활동하며 '비둘기 집'이라는 히트곡을 내기도 했던 李씨는 고종(高宗)의 아들인 의친왕(義親王)의 열한번째 아들이다. 그동안 서울 등지에 살면서 조선 말기 왕가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한편 전주시는 李씨가 거주하는 한옥 두 채를 황실체험용 민박집으로 꾸민 뒤 李씨에게 맡겨 6월께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황실 역사와 문화''황실 다례 및 예법''황실 음식' 등의 강의 및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

전주=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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