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청년실업, 또 하나의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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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 차원에서 사고하고 지역 차원에서 행동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슬로건이 있다. 세계화 추세에 맞춰 생각은 폭넓게 하되 해법은 구체적인 차원에서 구하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청년실업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아무리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여도 그 지역과 기업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아무 효과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도 지역 단위의 노사민정(勞使民政) 협의회를 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 단위의 직업훈련 체계를 도입하고, 그 지역의 중소기업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청년 실업난을 덜고 중소기업의 생산직 인력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고졸 청년실업은 전체 청년실업의 3 분의 2를 차지한다. 이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 필요한 직업훈련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만약 해당 지역의 주요 업종과 관련된 3개월가량의 직업훈련을 거치면 충분한 경우가 많다. 또 고졸 청년 실업자의 40%가 생산직에 취업하기를 희망한다. 이들이 그동안 제대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은 직업훈련의 기회를 잡기 어려웠고, 지역 중소기업들도 알맞은 인력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 직업훈련원의 경우 우선 그 소재지가 지역 차원이 아니다. 그리고 이곳의 훈련과정은 1~2년짜리 장기 코스가 많다. 당장 돈벌이가 급한 고졸 청년 실업자들이 등록해 다니기에는 부적합하다. 설사 직업훈련원에 입소한다 하더라도 이른바 잘나가는 직종에만 몰리고, 훈련을 받은 후에는 주변 지역의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으로 진출하려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청년실업이 줄어들지 않고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역 노사민정 협의회를 꾸리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지자체 단체장들은 지역경제 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협의회를 활성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적격이다. 그리고 협의회의 활동에 필요한 재원은 중앙정부의 각 부처가 제각기 지역에 배분해 오던 것을 깔대기 형식으로 통합해 충당하는 것이 좋다. 현재 지식경제부의 지역혁신협의회, 교육과학부의 지역직업훈련협의회, 노동부의 지방고용심의회가 중앙부처에서 각각 예산을 타내 운영되고 있다. 현재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약 5000억원으로 이는 우리 정부 전체 예산의 0.2%에 해당한다. 이를 한데 모아 지역협의회에 보내주면 훨씬 효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자체 단체장이나 노사협의회가 지나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역 기업들이 활발하게 참여해야 맞춤형 직업훈련과 일자리 구하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기업이나 민간단체로부터 예산배정 신청계획서를 미리 받아 이를 심의한 뒤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래야 민간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그 기업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이 성공한 대표적 경우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소개될 정도로 낙후된 국가였다. 그런 나라가 지역협의회를 활성화시켜 10년 뒤에는 똑같은 주간지 표지에 ‘유럽의 떠오르는 별’로 새로이 소개되었다. 아일랜드의 한 지역협의회는 오래된 건물을 개보수해 1~2층에는 소방서, 3~4층은 탁아소, 6~8층에는 벤처기업 사무실로 무상 임대하고 있다. 그리고 가정주부와 청년 실업자에게 단기간 직업훈련을 시킨 뒤 이들 기업에 일자리를 알선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현실에 맞게 실질적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지역 단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최선이다.

정인수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