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닛산車 살려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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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노자동차가 일본 닛산자동차 투자로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9일 보도했다.

르노가 갖고 있는 닛산 지분의 가치는 닛산이 한창 어려웠던 5년 전 54억달러에서 지금은 184억달러로 세 배 이상 뛰었다. 이는 모 회사인 르노의 시가총액을 웃도는 수준이다.

르노의 루이 슈웨체르 최고경영자(CEO)는 "닛산차 지분 매입 당시 차라리 50억달러의 금괴를 사들여 배에 싣고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시키는 게 낫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9년 르노가 54억달러에 파산 직전의 닛산 지분 36.8%를 매입했을 때만 해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닛산은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지분 매각 협상을 벌이다 실패한 상태였다.

다임러는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21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는 있는 닛산을 추가로 인수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 포기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그 대신 21억달러를 투자해 일본 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지분 34%를 매입했다.

그 후 닛산은 '카리스마의 경영자' 카를로스 곤의 지휘 아래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슈웨체르 CEO는 브라질 태생의 프랑스계 레바논 사람인 곤을 닛산에 특파한 것이야말로 자신이 내린 최고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 결과 닛산은 지난해 9월 말로 끝난 최근 회계연도에 르노의 다섯 배에 달하는 64억유로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FT는 매출이나 성장 전망 등에서 닛산은 르노-닛산 그룹의 주력 기업이 됐다고 보도했다. 닛산의 엔지니어들은 르노에 품질.생산기법을 전수하고 있으며, 르노가 해외에 진출할 때도 선배격인 닛산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르노는 최근 멕시코에 진출하면서 닛산의 지원을 받았으며, 중국에 진출한 1호 자동차 회사인 닛산의 지원을 받아 연내에 중국시장 진출을 선언할 계획이다.

르노와 닛산은 부품 공동구매를 전체의 70%까지 확대하고 양사의 생산과 품질관리를 연계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합병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슈웨체르 CEO는 "르노와 닛산은 두 회사로 이뤄진 한 그룹이며, 이를 바꾸고 싶지 않다"며 합병 가능성을 일축했다.

르노가 닛산 투자로 '대박'을 터뜨린 반면, 5년 전 닛산을 버렸던 위르겐 슈렘프 다임러크라이슬러 CEO가 "이상적 파트너"라며 추켜세웠던 미쓰비시자동차는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미쓰비시가 신제품 개발을 위해 대주주인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3천억엔(약 28억달러)의 재정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미쓰비시는 일본 내 일부 생산라인 폐쇄와 해외사업 부문의 재검토, 임금 삭감 등과 같은 극적인 구조조정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오는 4월 말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투자자들은 내년 닛산의 곤 사장이 르노의 CEO 자리에 오르면 일본에서처럼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FT는 "곤 사장의 파리 입성은 닛산이 거꾸로 르노를 인수하는 것처럼 보여 탕아(蕩兒)의 화려한 귀향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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