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적 버리는 제품 늘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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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업들이 한국 국적을 과감히 버리고 외국 국적의 제품생산을 늘리고 있다.무엇보다 제품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높아만 가는 무역장벽 넘기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국내에서 사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도 한 이유다.
삼성그룹의 해외공장은 벌써 35개.그중 삼성전자의 전세계 공장은 20개에 이른다.
이들 현지공장에서 만들어진 각종 VCR.컬러TV등은 더이상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거의 모두 「메이드 인 잉글랜드」고,「메이드 인 스페인」으로 팔린다.외국 부품을 절반이상 써야 하는 의무조달 비율을 충족하고 있어 내용상으로 도 그야말로외국산이다.
롤라이.유럽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독일산 카메라 브랜드다.
그러나 이 제품을 만드는 주인이 삼성이란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이 공장을 운영하는 주인은 한국의 삼성그룹이지만이곳에서 나오는 상품은 어느모로 보나 완벽한 독일산이다.
LG전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른나라 국적 상품을 만들어내는 해외 현지공장 수는 모두 13개다.그 외에 7개를 더 짓고 있다.한국내 공장수는 평택.청주등지에 10개.공장수로만 보면 이 회사가 한국회사인지,외국회사인지 모를 정도다.물론 아직 국내 매출이 훨씬 더 많지만 갈수록 해외공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들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날게 뻔하다.
세계경영을 내세운 대우그룹은 더하다.해외공장 만들기에 여념이없다.전자에 이어 최근에는 자동차 해외공장 설립이 한창이다.건설중인 자잘한 공장까지 쳐서 90개가 넘는다는 설명.그룹 관계자는 『자동차의 경우는 아직 반제품형태가 많지만 머지않아 루마니아산.러시아산 자동차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한다.이 그룹은 오는 98년께 총매출중 절반이상을 해외에서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이 때가 되면 이 그룹을 「한국기업」이라 부르기 곤란해질지 모른다.LG경제연구 소 정진하연구위원은 『이제기업의 국적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상품도 마찬가지다.앞으로는 국내기업의 사장이나 중역자리도 국적 불문하고 외국인 차지가 될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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