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적자는 우리야 우리” 광진·구리‘역사 마케팅’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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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적이 집중돼 있는 아차산을 사이에 둔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간에 ‘고구려 사랑’ 경쟁이 치열하다. 서로 고구려의 적자(嫡子)를 내세우며 자기 관할에 고구려 역사 관련 시설을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역사 마케팅’ 노력의 일환이지만, 절충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불과 수㎞ 정도 떨어진 두 지역에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들어서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역사문화관’ 건립 계획=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은 26일 ‘아차산 고구려역사문화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395억원을 들여 광장동 아차산 기슭 3만7444㎡ 부지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지을 계획이다. 128억원의 국비와 시비도 지원된다. 상설 및 기획전시관, 지하수장고, 교육실, 자료실을 갖추고 주변에 보루(삼국시대의 군사시설)와 온달장군 묘도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광진구는 건립 배경으로 “아차산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4655점이며, 이 중 광진구 내 출토물이 3390점인 만큼 광진구가 고구려의 중심에 서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차산에서 발견된 보루 17개 중 9개가 광진구에 속해 있고, 가장 핵심 지휘부였던 홍련봉 보루도 광진구에 있다는 것이다. 광진구는 “역사문화관이 건립되면 강동구의 암사 선사유적지, 송파구의 한성백제 유적(한성백제박물관), 하남시의 신라유적(이성산성) 등 서울의 선사·고대역사 관광벨트가 구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시 반발=광진구가 역사문화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자 인접 구리시는 발끈했다. 박영순 구리시장은 “광진구가 발표한 고구려역사문화관은 구리시에서 이미 추진 중인 ‘고구려역사기념관’과 유사한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구리시는 1994년부터 시 예산을 들여 고구려 유적(보루)을 발굴하는 등 고구려 역사복원 운동을 꾸준히 펼쳐왔다”며 “구리시야말로 고구려 역사 복원의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고구려역사기념관은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도하고 있다. 고구려보전회는 국민 성금으로 330억원을 모아 구리시 아차산 기슭의 교문동 일대 3만3000㎡에 ‘고구려역사기념관’을 2011년까지 짓는다는 계획이다.

구리시는 자체적으로 ‘고구려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국비 및 도비 22억원을 들여 아차산 기슭에 ‘고구려 대장간마을’(박물관)도 개장했다. 이곳은 드라마 ‘태왕사신기’ ‘쾌도 홍길동’을 촬영한 곳으로, 주말에는 하루 평균 1000여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구리시는 2002년 토평동 미관광장에 광개토대왕 동상을 세운 바 있고, 23일에는 이 옆에 광개토대왕비 복제비도 세웠다.

◇전문가들 “중복 투자”=최무장 전 건국대박물관장은 “유사한 성격의 고구려 관련 기념관 두 곳이 아차산 일대에 각각 조성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예산낭비”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두 지자체의 경계지점에 박물관을 한 곳만 조성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익진·성시윤 기자

◇아차산=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 고구려 온달장군이 숨진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외에 사적 제455호인 고구려 보루가 다수 발굴됐다. 보루에서는 고구려 토기와 철기류가 다수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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