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안석보건소 맞은편. 컨테이너 박스 13개가 자리 잡고 있다.
컨테이너 계단 곳곳에는 분홍빛 리본을 두른 축하 화분들이 자칫 떨어지지 않을까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지난달 4일 문을 연 화성서부경찰서 임시 청사의 모습이다. 이곳은 올 3월까지만 해도 백금전자라는 중소기업의 뒷마당이었다.
회사 사무실로 쓰던 2층짜리 건물은 현재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회의실·상황실·서장실 등이 하나씩 제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경찰서 직원들은 이달 말 컨테이너 생활을 접고 리모델링한 산뜻한 사무실로 이사 갈 예정이다. 그러나 리모델링 공사비만 10억원 이상 들어가는 이 사무실도 2010년 7월 인근 야산에 신축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신축 예정지인 야산에서는 이날도 포크레인이 한창 터 닦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경찰서가 생긴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공사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 이명박 대통령은 3월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서를 받는 자리에서 “화성에 가 보니 사고가 많이 났는데도 경찰서 하나 없어 주민에게 물어봤더니 십수년간 요청했다고 하더라”고 질책했다.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지방경찰청은 화성 시내에 경찰서가 들어설 만한 부지와 건물을 물색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이 백금전자 건물이다. 급한 김에 직원용 농구장으로 쓰는 뒷마당에 컨테이너 박스를 올리고 일단 경찰서 문부터 열었다. 주민들이 십수년간 요청해도 안 되던 일이 대통령의 말이 떨어진 지 20일 만에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화성서부경찰서엔 없는 게 많다. 유치장이 없어 구속된 피의자는 인근 수원서부서로 보낸다. 화장실이 없어 경찰관이나 민원인들은 용무를 볼 때 야외 임시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 길 건너 공터를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백모(63)씨는 “치안이 불안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고대하던 경찰서 신설이라는 숙원사업이 이뤄졌으니 좋긴 한데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도 든다”며 “시민들의 여론을 반영해 진작 준비했더라면 2년짜리 경찰서 치장하는 데 10억원을 쏟아 붓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서부경찰서는 리모델링 공사비 10억원을 제외하고도 보증금 7억원에 매달 1200만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