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고 ‘항공 멤버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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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명문 동아리 2
서울과학고를 찾았을 때 본관건물 정면에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었다. 과학영재학교로의 전환이 막 승인된 참이었다. 다소 고무된 학교 분위기 속에서 ‘항공 멤버십’ 동아리를 담당하는 홍기택(42) 교사를 만났다. 홍 교사의 안내에 따라 항공과학교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동아리실을 찾았다.


  말끔하게 꾸며진 동아리실의 한쪽 벽면엔 각양각색의 항공기 모형이 빼곡하다. 옆방으로 이어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생들이 만든 무선조종(RC, Radio Control)글라이더와 실습 도구들이 즐비하다. 전부 미 보잉사의 후원으로 갖춘 것들이다. 홍 교사는 “경비가 만만치 않아 기업의 지원이 없다면 아이들이 실험·실습을 마음껏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보잉 한국지사의 유규상 과장은 “학교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회사가 사회 후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동아리는 2005년부터 매년 7만5000달러씩 지원받고 있다.
  항공과학은 로봇·기계·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과학이 복합된 분야다. 따라서 학생들도 전기회로의 기초, 로봇 기초, Lab VIEW 프로그래밍 등 여러 가지 수업을 받는다. 강의는 홍 교사만 하지 않는다. 동아리가 구입한 측정 장치, 로봇 제작 도구 등의 각 회사 소속 엔지니어들이 나와 관련 강의를 해 준다. 전문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건국대 윤광준 교수 역시 든든한 지원자다. 세계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그의 연구팀 멤버들이 아이들의 연구를 성심껏 돕는다. 궁금증을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실험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그래밍한 것을 가져가면 대학의 측정장비를 이용해 결과치를 얻도록 해 준다.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일에 카이스트(KAIST)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이용한 1박 2일의 연수 프로그램이 그것. 카이스트 인공위성 연구센터에서 교수·대학생·대학원생들과 우주·항공 분야를 탐색하게 된다. 지난해 참가했던 홍정민(17)군은 “운 좋게도 며칠 뒤에 발사될 인공위성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신기했다”며 “교수님들이 쉽게 설명해 주셔서 어려운 내용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진우(17)군 역시 “단순히 항공 과학에 흥미가 생겨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연수를 받으면서 전기·전자·통신·소재 연구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산학 협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잉사는 동아리 회원들이 해외 이공계 체험을 갈 때 공장견학 프로그램에 초청한다. 한정된 장소에서 멀찍이 관람하는 일반 관광객과 달리 공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인턴 모집에서도 동아리 경력을 참고하기로 했다.
  막강한 후원 만큼이나 학생들의 열의도 뜨겁다. 동아리 초기 멤버였던 졸업생들은 조선시대 비행기 ‘비거’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MBC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동아리 출신 졸업생 대부분은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기계·전기전자·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다.
  재학생들 역시 틈날 때마다 동아리실을 찾아 로봇 제작이나 프로그래밍에 열을 올리고 있다. 풍동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유체역학 연구도 진행 중이다. 비행기 날개의 모양에 따른 공기 흐름 등을 관찰한다. 조현익(17)군은 “초·중학교 때는 과학활동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는데 다양한 실험·실습을 할 수 있어 좋다”며 “더욱이 무언가 배워 가면서 새로운 과제를 연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동아리실의 벽 한켠에는 보잉사 홍보 브로셔가 액자에 담겨 있다. 항공멤버십 학생과 교사의 얼굴을 담은 것이다. 전세계에 내보내는 보잉사의 통일된 광고 중 유일하게 달리 제작됐다. 패기 넘치는 환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동아리 ‘항공 멤버십’의 꿈은 언젠가 초소형 무인 항공기(MAV, Micro Air Vehicle)를 제작하는 것이다. 현재 동아리의 이론·실습 활동은 모두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MAV를 만드는 일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학생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연구를 통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아리 회원들의 꿈은 세계로, 미래로 비상하고 있었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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