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주문 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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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인이 김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오랜 옛날이다.고려 중기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된 그의시 가운데 김치가 등장한다.우리 문헌에 나오는 김치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무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 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되네』가 그것이다.당시 김치로 무장아찌와 무소금절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들어가면 딤채라는 말이 나타난다.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대신 소금물을 부음으로써 국물 많은 김치를 개발한 것이다.장아찌류(類)가 염장(鹽藏)과정에서 채소의 수분이 빠지면서당분.비타민 등이 함께 빠져나가는데 비해 딤채는 영양분이 국물로 옮겨진다.특히 동치미(冬沈)는 채소 자체가 국물속에 침전(沈澱)되고 만다.이를 침채(沈菜)라 불렀으며,이것이 팀채-딤채-김채를 거쳐 김치로 변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定說)이다.
김치에 고추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다.임진왜란후 남방식물인 고추가 들어옴으로써 음식문화에 혁명이 일어났다.그전까진 양념으로 소금.후추.천초(川椒)등을 주로 사용했다.고추가양념으로 사용된 후에도 김치는 무.배추.고사리 등을 넓적하게 잘라 버무린 섞박지,그리고 소금에 절인 무뿌리를 소금물에 담근동치미가 전부였다.지금의 배추통김치가 나온 것은 배추 품종이 크게 개량된 근대에 이르러서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봄철 장담그기와 함께 가정의 중요한 행사였다.『무.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다…』로 시작하는 『농가월령가』시월령에 나오는 것처럼 집집이 서로 품앗이하며 화목(和睦)을 다지는 것이 미풍양속(美風良 俗)이었다.
이때 돼지고기를 삶아 배추의 노란 속잎과 양념을 함께 먹는 속대쌈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고 사먹는 가정이 늘더니 드디어 김장까지 「주문」으로 해결하는 신종사업이 나왔다.농협은 이달부터 내년 3월15일까지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가정에 직접 배달하는「김장김치 택배(宅配)사업」을 실시한다.전국 어 느 농협에든 전화 한통이면 「김장 끝」이다.올해 3,000 판매가 목표라고한다.세상이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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