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병들어 쓰라린 가슴 안고 … 외롭게 간 ‘산장의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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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있네…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노래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가수 권혜경(본명 권오명·사진) 씨가 25일 오후 1시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77세.

노랫말처럼 그는 독신의 몸으로 남을 도우며 외로이 살다가 병마로 스러져갔다.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산마을의 끝자락에 있던 조그마한 그의 집은 가사 그대로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산장’이었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된 데다 최근 교통사고까지 겹쳐 2~3일 전부터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다 숨졌다”고 말했다. 삼척 출생인 고인은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 가수 3기로 발탁됐고, 57년 음반 데뷔곡인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작사가 반야월이 마산결핵요양소에서 봤던 환자복의 여인을 모티브로 노랫말을 만들었고, 폐결핵으로 투병하던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붙였다. 그 뒤 라디오 드라마 ‘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인 ‘호반의 벤치’, 59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를 불렀다.

59년 심장판막증 투병 중 설상가상으로 후두암 선고까지 받았다. 투병 중 작곡가 박춘석씨와 손잡고 발표한 ‘물새 우는 해변’도 인기를 모았다.

그 뒤 60년대 중반부터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사형수, 무기수, 10대 범죄자 등 재소자들을 격려하는 봉사활동에 몰두해 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재소자 사이에 ‘처녀 어머니’로 불렸다.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 인권옹호 유공표창 등을 받았다.

빈소는 충북 청주 목련공원에 위치한 청주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043-221-3470.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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