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깨운 인플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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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28면

잠시 달콤한 꿈에 취해 있었다. 코스피지수가 1900 선을 회복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모처럼 주식을 사들이자 낙관론이 득세했다. 증권사들은 주가지수가 머지않아 2000 선을 넘고 연내 2300까지 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는 황소(대세 상승)의 영역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 한 주일은 국내외 증시가 여전히 곰(대세 하락)의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최근 주가 상승은 어디까지나 ‘베어마켓 랠리(약세장에서의 일시 반등)’였던 셈이다. 외국인은 매도로 돌아섰고, 국내 주식형 펀드의 환매도 늘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한 것은 배럴당 130달러 선을 훌쩍 넘어선 고유가와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공포다. 휘발유값이 L당 2000원 선에 도달하면서 고유가의 고통은 이제 우리네 일상사가 됐다. 주말 미국에선 주택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가세하면서 주가가 다시 급락했다. 유가가 계속 뛰고, 미국 경기회복의 전제조건인 주택시장 안정이 아직 요원한 상황이고 보니 인플레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걱정하는 소리가 커진다. 미 달러화는 다시 약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시장은 유가의 연내 150달러 돌파 시나리오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설사 유가에 투기적 거품이 끼었다고 해도 상당 기간 더 부풀다 터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과거 IT 버블이나 주택 버블 때도 거품 경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갈 때까지 간 뒤에야 거품이 꺼졌다는 경험론이 대두된다.

고유가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선 유럽연합(EU)과 주요 신흥국들에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쑥 들어갔다. 당장 우리나라도 그렇다. 인플레에 맞서기 위해 거꾸로 금리를 올리는 나라가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확산된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 유동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유동성의 축소는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더 큰 타격을 주게 마련이다. 신흥국 자산은 아무래도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의 외환위기설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치도 낮춰야 할 상황이다. 고유가는 국내외 소비자들의 구매력를 위축시킬 것이고, 여기에 원가 부담이 가세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떨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석유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신흥국 중 최고 수준이다. 전체 수입에서 원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자꾸 부풀어 19%에 도달했다. 고유가는 앞으로 일정한 시차를 두고 가계의 소비지출을 계속 압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고환율(원화가치 하락) 정책으로 물가 오름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인플레의 시대가 약 30년 만에 다시 열리고야 마는 것인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다시 불확실성의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분간 몸을 낮추는 투자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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