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서 돈의 씨앗을 주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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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6면

불야성을 이룬 여의도 증권가처럼, 해외 펀드 수익률이 떨어져 잠 못 자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뉴시스

‘돈 버는 부자들은 따로 있다’는데 지난 1년은 어땠을까. 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단숨에 오가는 동안 절묘한 성공담도 속출했다.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재테크 교본(敎本)’이다. 10개 은행ㆍ증권사의 주요 지점에서 일하는 프라이빗뱅커(PB)와 영업직원 60명이 살짝 들려준 생생 실화를 소개한다.

잿빛 주식을 줍다
펀드로 불린 자산만 3억원인 자영업자 이모(50ㆍ경기도 분당)씨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폭락·최악·공포라는 단어는 돈의 씨앗이다.” 그는 신문이 이런 단어로 도배를 하면 낙폭 큰 펀드에 주저 없이 낚싯대를 던진다. 두 달 전 가입한 중국 펀드가 그랬고, 20% 가까운 수익률에 입이 찢어진다.

본디 ‘대중의 통념’을 거스르는 건 형극이다. 그러나 역발상이야말로 돈 버는 지름길의 하나다. 서울 청담동의 중소기업 사장 신모(55)씨도 ‘왕따’를 자처한 덕에 수익률 맛이 쏠쏠하다. 남들이 공포에 떨던 올 2월 초 1억원을 우리CS운용 러시아 익스플로러, 슈로더 브릭스 같은 펀드에 넣었다. 3월 중순 코스피가 1500 선까지 밀렸지만 꿈쩍도 안 했다. 결국 그의 펀드들은 석 달 만에 14%의 수익률을 뽐내고 있다.

투자 눈치 9단
회사원 강모(40·분당)씨는 해외펀드 비과세(6월)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흥국 펀드에 침을 흘렸다. 경제 축이 신흥시장으로 옮겨 간다는 낌새에 경제 기사며 재테크 사이트를 찾아 정보를 모았다. 일단 지난해 초부터 그가 공략한 주 메뉴는 중국과 인도 펀드였다. ‘수익률=맑음’이었다. 한데 강씨는 여름 직전에 갑자기 브릭스 펀드로 식단을 바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풍기는 비린내를 감지하고 위험을 쪼개는 펀드를 찾은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을 뒤져 투자 정보를 검색하고 고민했기에 흉년에 대비하는 눈치를 기를 수 있었다. ‘발품=돈’이라는 재테크 계명은 지난 1년 사이에도 여지없이 확인됐다.

대기업에 다니는 역삼동의 차모(47) 부장도 비슷하다. 손실 나던 일본 펀드로 고민하다 결국 올 초에 미련을 접었다. 50%를 환매한 뒤 천연자원 펀드에 돈을 넣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수익률 좋다는 말에 덥석 가입한 일본 펀드와 달리 ‘시장 안목’을 기르는 데 몰두했다. 귀를 곧추세우고 자료를 수집한 끝에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악재가 불거지면 원자재 투자의 매력이 부각될 것으로 봤다. 결과는 짜릿했다. 최근 한 달 수익률만 10%에 이른다. 사실 장기 투자가 기본이지만, 어설프게 가입한 펀드라면 시장 눈치를 잘 살펴 대타(代打)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고수익 방정식=忍+忍+忍
주부 최모(36·압구정동)씨는 2006년 5월에 이머징유럽 펀드와 광업주 펀드에 7000만원을 넣었다. 지난해 주가가 출렁이면서 수익률이 떨어지자 불안한 마음에 환매를 결심했다. 그러나 거래 은행의 PB는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값이 들썩일 것”이라며 달랬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최씨는 올 5월 수익률이 좋을 때 펀드를 처분해 1억2300만원(연 38% 수익률)을 손에 쥐었다. ‘참을 인(忍)’ 3개로 더 많은 돈다발을 건진 것이다.

A은행 삼성역 지점과 거래하는 회사원 정모(35)씨는 브라질 펀드에 일찌감치 1000만원을 넣고 있었다. 그러나 연초에 세계 증시가 휘청대면서 브라질 증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환매를 결심했다. 담당 직원은 “원자재 시대는 이제 시작”이라며 두 손 들고 말렸다. 그동안 높은 수익률을 올려 준 직원이었기에 정씨도 결국 참기로 했다. 결국 펀드 수익률은 최근 한 달에만 10% 오르면서 누적 수익률이 26%에 이른다.

첨단 방탄복을 입다
“금융공학펀드가 도움이 됐다”고 언질한 PB가 많았다. 펀드로 5억원을 굴리는 사업가 원모(45)씨는 연초 코스피 지수가 1600 선일 때 동부운용의 델타 펀드에 자산의 25% 정도를 편입해 지금까지 6%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선물거래의 위험 회피 전법인 ‘델타 헤징’을 통해 지수가 1년간 40% 넘게 안 떨어지면 원금을 최대한 보전하고, 주가가 오르면 최고 20%의 수익을 내는 방패형 상품이다.

잠실에 사는 직장인 강모(46)씨는 2006년 2월 일본 펀드에 1억원, 지난해 초엔 리츠 펀드에 1억원을 넣었다. 지난해 10월까지 수익률이 각각 -7% 수준으로 떨어지자 손절매를 하고 11월 초 델타 펀드로 갈아타 현재까지 하락률을 -2%로 좁혔다. 비록 수익은 안 났어도 코스피가 -10%가량 떨어진 것에 비하면 다행이다. 일본 펀드는 환매 때보다 15% 정도 더 빠졌다.

과녁이 없으면 화살이 빗나간다
중소기업 사장인 차모(54)씨는 지난해 상반기 미래에셋의 베트남&차이나 펀드에 3억원을 넣었다. 주가가 쭉쭉 올랐지만 그는 목표 수익률을 50%로 잡았다. 마침 10월 중순에 이 수치에 이르자 뒤도 안보고 환매했다. 그 후에도 보름간 주가가 올랐지만 아깝다고 생각지 않았다. 11월부터 세계 증시는 서브프라임 폭풍으로 급락했지만 차씨는 비바람에 젖지 않았다.

그는 종합관리계좌(CMA)에 넣어 뒀던 환매자금을 올 4월 홍콩 H지수에 투자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넣었다. 지수 흐름이 지금처럼 유지되면 이 상품은 다음달 말에 연 24%의 수익률로 상환된다. 목표 수익률을 뚜렷이 했기에 덕을 본 사례다. ‘못난이 소리’까지 들었던 리츠 펀드는 특히 그렇다. 지난봄까지 호시절이었을 때 목표 과녁이 없어 적절한 환매 시점을 놓친 투자자가 많았다.


도움말=삼성·미래에셋·우리투자·푸르덴셜·하나대투·한국투자증권, 신한·우리·하나·국민은행의 PB 및 영업직원 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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