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 화려한 사람들도 국회에 모이면 ‘퇴짜 집단’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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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2면

-5선에 성공했는데 국회의장과 당 대표 후보로 동시에 거론된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자꾸 얘기한다. 국회의장 출마를 결심했고 한번도 생각이 변한 적이 없다.”

국회의장·黨 대표 후보로 주가 올리는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

-당 대표 역할도 중요한 시기 아닌가.
“야당 시절의 당 대표는 우두머리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있는 집권당 대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

-홍준표 새 원내대표가 수도권이니 대표는 영남 출신이어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나.
“당원이 선택할 문제다. 한나라당은 집단지도 체제이며 최고위원회의 테이블에는 어차피 수도권·영남·충청권 사람이 다 앉는다.”

-국회의장이 할 일이 많은가.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상당히 안 좋다. 18대에도 국민의 수준에 맞는 국회를 만들지 못하면 안 된다.”

-어떤 점에서 비판을 받았나.
“지난 총선 때 많이 들은 얘기는 ‘표 찍어 줄 테니 싸우지 마라’는 것이다. 18대 국회는 싸움 없는 국회, 날치기 않는 국회, 발목 잡지 않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의장이 되면 날치기, 강행 처리를 안 하겠다는 말인가.
“나라를 위해 꼭 강행 통과를 해야 한다면 의사봉은 잡아야지. 국민이 강행 처리라도 하라고 판단한다면 거기에 따라야 할 것이다.”

-원내대표 당시 본회의장 점거도 했는데.
“가장 큰 싸움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건이었다. 한나라당이 야당 10년 동안 유일하게 승전한 ‘투쟁사적 의미’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같았다고 할까.”

-비결이 있었나.
“내가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씨름선수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고민을 했다. 그전에 있었던 사학법 통과 때 작전도 전략도 없이 5분 만에 저쪽(열린우리당)에 봉쇄를 당하고 앞에서 깨작깨작하다 끝났던 사례가 생각났다. 기습하려고 신상진·김충환 의원 등을 본회의장에 잠입시키는 등 전날부터 준비했다. 여당이 두 손 들지 않았나.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있으면 야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고 그럴 땐 여당도 양보해야 한다.”

-17대 국회에서도 의원 외교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외유 자체를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사는 구분해야 한다. 의원들이 출장 갈 때는 인터넷에 일정을 공개하고 다녀와서 쓰는 보고서도 의원들이 책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여행·관광성은 자기 부담으로 가면 된다.”

-외유와 관련해 기억나는 일이 있는지.
“재선 의원으로 당의 기조위원장을 맡았을 때 상임위에서 KT가 스폰서가 돼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시애틀에 나가기로 했다. 출발하려는데 일이 생겼다며 당에서 못 가게 했다. 그런데 현지에 간 의원들이 시차 적응을 위해 골프를 치고 식당을 다닌 게 현지 신문에 났다. 술집에서 여자들과 술을 마셨느니 안 마셨느니 논란이 일면서 의원들이 귀국할 때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왔다. 나는 못 간 게 전화위복이 됐다.”

-국회의장을 2년 하고 나면 그 이후엔 전면에서 물러나는 것 아닌가.
“그게 관행인데 관행도 타파할 건 타파해야 한다. 2년 후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화합을 잘 못한다. 양쪽 모두와 호흡을 맞춰 봤는데 과거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던 기억은 없나.
“2006년 지방선거 공천 때 내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나게 되니 후임에 당연히 관심이 있고, 박 전 대표도 공천이 성공적으로 되길 바랐다. 두 사람은 서울시장 후보를 외부에서 영입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결국 (외부 인사 영입에) 성공은 못 했지만…. 그 외엔 별 기억이 없다.”

-최근엔 ‘친이명박’으로 분류되는데.
“사실 내가 ‘친박’의 원조 아닌가. 기본적인 신뢰가 있고 박 전 대표가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반박’으로 몰려 혼났다. 아마 나도 이틀만 늦게 선거를 했으면 떨어졌을 거다.”

-박 전 대표와 함께 일할 때 기억나는 일은.
“국가보안법을 지키느라 12월 31일을 본회의장에서 새운 적이 있다. 오전 1시가 됐는데도 박 전 대표는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더라. 도저히 안 되겠기에 ‘집에 다녀오시라’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대표실에 억지로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무실에 보일러가 안 나와 차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차량 히터마저 고장 나 떨고 계시다는 얘기에 내 차를 보내 드렸다. 정말로 차에서 밤을 새웠다. 참 꼿꼿한 분이다.”

-지금은 친박 인사 복당을 원칙으로 밝히고 있는데.
“나도 복당은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표현하는 방법 등은 아쉽게 생각한다. ”

-그 문제는 공천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는데.
“공천이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천엔 나름의 원칙·철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 벌금을 받았느냐, 탈당을 했느냐, 이런 걸 무조건적인 잣대로 할 게 아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유연하게 했어야 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권 때 장관을 하고 의원직을 받았던 사람에게 공천을 줄 땐 엄격해야 한다. 지역구 공천을 엄정하게 한다더니 낙하산을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씩 타고 지역구를 씽씽 옮겨 다니는 모습도 보이더라.”

-가까이서 본 이 대통령의 스타일은.
“사고의 전환이 빠르다. 다양한 경험이 있어 일머리를 잘 안다. 토론을 통해 문제를 파악한다. 군대 후생사업을 얘기하다 나라 전반의 후생 문제로 들어가고 아이들 급식 문제까지 좌충우돌·종횡무진하다 돌아온다.”

-장점을 꼽는다면.
“당선인 시절 정부조직법 때문에 회의를 많이 했다. 그런데 매일 도시락·김밥·샌드위치만 먹으니 하루는 ‘좀 맛있는 것 좀 달라’고 했다. 그래서 돌솥비빔밥을 먹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게 있나’ 하더라. 참 소탈하다.”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과의 ‘소통’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체제가 정비돼야 한다. 새 원내대표단이 30일부터 일을 하고 다음달 초 국회의장단 선거를 하고 7월에 전당대회를 하면 소통이 개선될 거다.”

-비전위원장으로 대선 공약을 만들었는데 대운하로 논란이 많다.
“내가 비전위를 맡고 보니 대운하가 3대 공약 중 하나더라. 토론 끝에 (우선순위를) 확 낮췄다. 우선 낙동강 등에 수심을 확보하고 맑은 물을 공급해 배가 다니게 한 뒤 필요하다 싶을 때 운하를 뚫으면 된다.”

-이재오 의원의 행보에 관심들이 많다.
“미국으로 떠나는 이 의원은 개인적으로 아플 거다. 엊그제 만나 외국 경험이 별로 없으니 잘됐다고 하자 이 의원은 ‘내가 (해외 경험이 적었던) 노무현과’라고 하더라.”

-이상득 의원도 주목 받는데.
“세종이 성공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양녕대군이 주유천하하면서 민심을 전달했던 덕이 크다. 지금까지 청와대 주인의 말로가 불행한 것은 양녕대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을 비롯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같은 사람들이 와인 한 잔 놓고 민심을 전해 주면 대통령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거다. 대통령은 세 가지 ‘원초적 자유’가 없다. 목욕탕·이발소·식당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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