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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꿈 빨며 건져낸 희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3호 13면

뮤지컬 ‘빨래’
8월 17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일·공휴일 오후 3시·7시(월 쉼) 문의 02-6083-1775

반지하에 살며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은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갔다가 이웃집 옥탑방에 사는 몽골인 솔롱고와 마주친다. 바람에 날려 건너편 옥상으로 떨어진 나영의 빨래를 솔롱고가 주워 건네주고, 두 사람은 고향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다.

뮤지컬 ‘빨래’는 달동네 꼬불꼬불한 골목길, 거기 다닥다닥 붙은 셋방살이 이야기다. 건물 사이가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고 사람들은 좁은 마당에서 한데 빨래하며 부대낀다. 세탁기에 돌리는 빨래가 아니다. 손으로 척척 접어 빨래판에 문지르고 큰 대야에 넣어 발로 콱콱 밟는 빨래다. 대야 속에서 왁자지껄 스텝을 밟다 보면 서먹하던 이웃도 금방 정들고 다투던 주인과 세입자도 어느새 풀어진다.

골목길을 가로질러 널린 빨래, 옥상에 넌 빨래만 봐도 동네 사람들 속사정이 빤히 보인다. 운신하지 못하는 자식을 위한 기저귀, 옷 장사 하는 과부가 널어놓은 홀아비의 팬티, 저임금 서비스직 처녀의 유니폼 치마, 이주 노동자 총각의 작업복. 빨래가 알록달록 나부끼는 무대에선 일상의 고단함과 활력이 동시에 묻어난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슬플 땐 빨래를 해’ 등 서정적인 가사와 잘 어우러진 멜로디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꿈을 좇아온 서울, 바쁘고 정신없이 돈 버는 게 좋아 시작한 생활이지만 서럽고 힘들 땐 왜 여기서 이렇게 사는지 몰라. 그럴 땐 빨래를 해요. 오늘은 쉬는 날 가을 햇살 눈부시고 바람이 잘 불어. 빨래가 바람에 몸을 맡기듯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눈물 나는 마음 꼭 짜서 널면 보송보송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얼룩 같은 어제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뮤지컬 ‘빨래’는 삭막한 대도시에서 이웃의 정을 발견하고 허름한 일상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다. 축 처지기 쉬운 우리 삶의 무게는 흥겨운 공연을 따라 삶을 떠받치는 에너지로 변한다. 묵은 때가 점점 쌓이고 일상에 지칠 때면 한 번쯤 ‘빨래’를 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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