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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올해 주총 어떻게 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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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변은 없었지만, 주주들의 위력은 확실히 보여줬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12월 결산법인들의 주주총회에 대한 증시 주변의 평가다. 주총 전에 무성했던 추측과 달리 경영권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이변'은 없었지만, 경영진들이 소액주주들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확실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LG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위원은 "한국 증시도 '주주 제일주의'로 가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고 말했다.

◇이변은 없었다=주총장에서의 표대결은 대부분 기존 경영진의 승리로 끝났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성사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SK는 최태원 회장 측이 2대주주인 외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을 눌렀다. 피를 말리는 접전의 결과는 국민연금을 비롯,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확보에 앞선 崔회장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 등 주주들의 위력은 확실히 입증됐다.

일부 기업에선 소액주주들이 똘똘 뭉쳐 현 경영진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고려산업개발 소액주주들은 두산건설과의 합병에 반대했으나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진 못했다. 한림창업투자 소액주주들은 이사 선임엔 실패했으나 감사는 자신들이 추천한 인물을 뽑는 데 성공했다.

◇주주 중시 풍토 확산=올 주총에서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관심이다. SK가 주총 후 이사회 속에 투명경영위원회를 만들기로 했고, KCC 측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이 소액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하겠다고 했다.

외국인 지분이 경영권을 위협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 점도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포스코가 집중투표제 배제조항을 삭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들은 사외이사 비율을 대폭 늘렸다. 예컨대 현대차 이사회는 사내이사 7명에 사외이사 11명으로 구성된다.

기업들은 또 주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배당을 대폭 늘렸다. 거래소 기업의 배당성향은 지난해 19.1%에서 올해 24.6%로 높아졌다. 당기순이익이 100원이면 24.6원을 배당으로 준다는 얘기다. 코스닥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39%다. 배당성향이 100%가 넘는 기업도 SK.LG.대림통상.경방 등 10여곳이다. 분기배당제도를 도입한 곳도 거래소가 30개사, 코스닥이 37개사나 된다.

LG증권 강현철 연구위원은 "이제 우리 증시도 배당금을 기대하고 주식을 장기보유하는 배당투자가 가능한 상황으로 옮겨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예 회사가 주식을 취득해 소각하는 곳도 늘었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주식의 유통물량을 줄여 주가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주주들에게 주가상승으로 보답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차(거래소)와 안철수연구소(코스닥) 등 12개 기업이 주식 소각을 결의했다. 기아특수강.새한미디어 등 거래소 기업 14개사는 회사 정관에 주식소각제도를 도입했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유동원 이사는 "한국 주식시장이 다른 아시아권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온 것은 저배당과 지배구조 문제에 있었다"며 "올해 SK사태 등을 거치면서 지배구조 개선노력과 함께 배당성향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 한국 기업을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도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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