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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할매! 오늘 뽀끄땡스 한번 추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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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날마다 포크땡스
오채 지음, 오승민 그림, 문학과지성사
171쪽, 8700원, 초등 5 ~ 6학년

흔히들 ‘동화 같은’ 이라는 표현을 쓴다. 꿈이 가득하고 밝고, 또 뭔가 희망적이란 뜻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화 같지 않은 동화다. 부모의 이혼이나 학교 내 집단 따돌림이 갈등 소재로 등장하고, 인물 심리묘사 또한 정교하고 설득력 있다. 어른이 읽어도 순간순간 짠해진다.

주인공 민들레는 열두 살 소녀다.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와 섬에 산다. 가난 때문에 뭍으로 일 나간 엄마는 재혼을 하지만 들레에겐 아직 비밀이다. 들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랑 같이 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밤섬에서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즐겁다. 할머니와 친구 진우가 유일한 말동무지만 외로움은 그다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온다. 학생이 합쳐봐야 9명뿐인 학교에 새로운 선생님이 섬을 찾는다. 게다가 동갑내기 보라도 전학을 온다. 그런데 들레는 시큰둥하다. 선생님은 조만간 섬이 답답하다며 떠날 게 뻔하고, 서울말 쓰는 보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진우를 보니 왠지 시샘이 난다.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들레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은 이 뿐이 아니다. 엄마의 재혼 사실을 동네 사람을 통해 듣게 된다. 자기 엄마가 다른 아이의 엄마라니! 어미소도 송아지가 팔려 나가면 며칠씩 굶는다는데, 딸을 버리고 시집 간 엄마를 이해하라니! 들레는 할머니 몰래 엄마를 찾아 매정한 말을 마구 퍼붓는다. 하지만 엄마를 할퀴고 나서도 상처는 고스란히 들레의 몫이다. 엄마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할머니가 들레를 안쓰럽게 토닥댄다. 눈물 짓는 손녀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지난해 학교 운동회서 배운 포크댄스를 추잔다. “애린 것이 머리 속에 너무 많이 담고 있어도 못 쓰는 법이여. 이놈 추고 우리 싹 잊어버리자.”(59쪽)

그런데 마음 둘 데 없는 들레를 다독이는 건 뜻밖에 보라였다. 보라는 자신의 부모도 이혼한 사실을 먼저 털어놓는다. “가끔은 우리가 어른들을 이해해야 할 때도 있어. 네가 엄마를 미워하는 것은 그만큼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거야. (중략) 너희 엄마는 정말로 그 아저씨를 좋아할 수 있어.… 아저씨도 너희 엄마를 좋아하니까 너까지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했어.” (121~123쪽)

보라의 어른스러운 말에 들레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새아버지가 만나기 전날, 들레의 생각은 훌쩍 커져 있다. 자신이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에게 외친다. “할매! 오늘 뽀끄땡스 한번 추카?”

올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여러가지 미덕을 고루 갖췄다. 내풀로·물마루·샘바리 등 순우리말을 자연스럽게 문장 속에 녹여냈다. 처음 들어도 뜻을 대충 파악할 수 있고 발음하면 순하고 예쁜 표현들을 정성스레 골라냈다. 또 발음 그대로 쓰인 전라도 사투리는 인물들의 행동과 섬 배경에 잘 어우러져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더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동화 속 어른들의 모습도 사뭇 색다르다. 비밀 아지트를 만들어주는 선생님, 포크댄스를 추는 할머니, 엄마의 재혼을 두둔해주는 동네 이장 등은 아이들을 무작정 가르치려 들거나 권위를 내세우거나 하지 않는다. “엄마 인생도 생각허야재” “어리다고 해도 다 어린 만큼의 뻑뻑함이 있는 것인디”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할 줄 안다. 그저 허물 없는 친구 같다. 때로는 아이들과 ‘눈높이 대화’만이 능사가 아닌 듯하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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