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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책읽기] 일본 외교 전문가가 본 아시아 격동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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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시아 속의 일본 (アジアのなかの日本)
다나카 아키히코 지음
NTT출판(2007년 11월), 359쪽, 2400엔

지난 30년간 동아시아는 급변했다.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중동·유럽 등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민주화·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단계적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구상과 같은 경제통합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북한 핵위협이라는 불안요인을 끌어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일본의 동남아시아 정책의 지침이 된 후쿠다 독트린(1977년 8월 당시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필리핀에서 천명한 외교원칙)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까지 일본의 아시아 외교를 상세히 분석한 책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아시아의 정치 움직임과 일본 외교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모두에서 필자는 “아시아는 하나가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필자가 아시아의 단일화 움직임을 경험한 것은 2000년 전후였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미일 마찰을 비롯해 일본의 외교정책은 미국·유럽에 맞춰져 있었다. 나 역시 (아시아보다는) 미국과 유럽을 방문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98년부터 아시아유럽회의(ASEM)의 비전그룹의 일원이 되고, 99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제창한 동아시아 비전그룹의 멤버로 아시아 지역을 빈번하게 다니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92년 한중 국교수립 후 중국 항공기가 한국 상공을 날게 되면서 물리적으로 아시아는 가까워졌다. 역내 비즈니스와 관광 등 민간교류도 크게 늘었다. 일본과 아시아 정상들이 한꺼번에 만나는 일 역시 30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아시아가 착실히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역화와 지역통합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과 그 처리방법, 사회의 문제해결 구조 등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필자는 “제각각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은 사실 나름의 사연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냉전 종식 후 세계화가 이어지는 과정과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운동 등이 그렇다. 한국과 필리핀·대만의 민주화 운동, 민주화 세력이 군부 탄압을 받고 있는 미얀마의 근황까지 상세히 소개했다. 일본의 외교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치, 경제 30년사를 총정리한 것이다.

한일·한중 외교관계의 풀리지 않는 숙제, 역사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역사문제가 국제관계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80년대부터, 심각한 외교사안이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65년 한일협정체결과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때 역사문제가 나왔지만 큰 이슈로 거론되지는 않았다는 게 필자의 기록이다.

필자가 꼽는 역사분쟁의 시발점은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다. 당시 근대사 교과서 검정에서 ‘침략’이라는 표현이 ‘진출’로 수정되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여론이 본격화됐다. 교과서 문제는 결국 일본 지도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까지 이어졌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에는 심각한 외교 냉각기를 겪었다. 필자는 이 문제를 냉전종식과의 관계에서 분석하고 있다. “냉전체제에서 우방국끼리 역사 문제를 거론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민주화와 사회의 다원화,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 여론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냉전 종식 후 한국과 중국의 사회 변화를 주목했다. 피해당사자들의 고령화 역시 역사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의 아시아정책이 있었느냐. 필자는 “몇몇 시도는 있었지만 통일된 정책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앞서 일본이 아시아 이웃들과 어떤 역사를 공유해왔는가를 일본과 아시아국가들이 얼굴을 맞대고 확인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다나카 아키히코(田中明彦 · 62)

1954년 일본 사이타마 출생. 도쿄대 교양학부를 졸업하고 미 MIT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세계시스템』 『전쟁과 국제시스템』 『안전보장』 『워드 폴리틱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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