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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같은 생각 버리고 사람 기용 잘 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MB 밀면서 ‘떡고물’ 안 바라… 1년4개월 지지했는데 배신
■ “아들 공천에 관심 안 뒀다”… 외부 인사 심사 어처구니 없어
■ 민주계 빠진 여당은 무주공산… “내 말 한마디로 부산 바람 일어”
■ 訪美 전 직접 사과전화 해… “투표율 40%는 더럽다고 안 간 것”
■ 청와대서 “니들이 친박연대면, 우리는 명박고대다” 대응하면 안 돼
■ MB는 사심 버리고 덤비는 사람… 곧 큰 줄기 잡고 민심도 이해할 것

월간중앙이명박정부에 비상등이 켜졌다. 취임 3개월도 채 안 돼 지지율이 반 토막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예언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월간중앙>이 김 전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 제대로 된 ‘MB 비판’을 들었다.


지난 3월, 총선을 며칠 앞두고 김영삼(81·YS)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는 직설적 비판을 날려 정가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부산 경성대에서의 특강에서 그는 언성을 높였다.

“솔직히 말해서 한나라당 공천은 아주 실패한 공천이고, 잘못한 공천이다.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소위 청와대 측근이고 실세라는 몇몇이 저들 멋대로 저들이 좋아하는 사람들만 공천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다과회가 열렸을 때도 이렇게 성토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의 지역구는 그쪽 방향으로 오줌을 눈 적도 없는 사람이 공천을 받아 구청장을 포함해 시의원·구의원 전부가 반대하고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두고 봐라. 반드시 민의가 승리할 거다.”

이에 실패한 공천의 주인공이 된 김무성 의원도 “한나라당은 이명박 기획, 이재오 감독, 이방호 주연의 밀실공천으로 3류 드라마를 찍고 있다”면서 “개혁공천이 아니라 개판공천”이라고 거들었다.

실제로 김 의원이 탈당계를 던졌을 때 이종철 부산 남구청장과 남구을 지역의 시의원과 구의원 전원이 함께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며 저항했다. 결국 YS의 독설은 부산을 무소속 돌풍의 진원지로 만들었다.

이는 이른바 ‘MB(이명박 대통령)계’와 ‘박근혜계’ 그리고 ‘강대표계’가 난투극을 연출한 후 정당 사상 전무후무한 ‘친박연대’라는 당의 출현을 빚은 후유증이었다. 그러나 YS는 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재오·이방호 떨어지니 기분 좋아”

비록 친박연대는 아니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무성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그의 선거 캠프를 찾았을 때 또다시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이미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갔고,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권력 이동이 본격화하면서 총선도 한나라당 압승이 기정사실화한 시점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YS는 어림없다는 행보를 보이며 여론 한복판에서 연이어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YS가 MB의 후원자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그 후 총선이 끝나자 그는 “이재오·이방호가 떨어져 기분이 좋아 잠을 설쳤다”고까지 했다.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홍사덕 전 의원 등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당선자들이 상도동으로 당선인사를 갔을 때였다.

YS로서는 생각할수록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했던 자신의 뜻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어 기뻤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독특한 화술 구사로 유명한 YS. 그는 ‘해석의 오류’를 낳을 수 있는 말은 하지 않는다. 최연소 국회의원에서 대통령까지 지낸 정치 9단이라고 하니 마치 선문답을 던지듯 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는 여전히 누구를 만나도 대단히 직선적이고, 그 말 속에 계산을 넣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측근들이 YS를 모시는 것이 쉽고도 조심스럽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측이나 JP(김종필 전 총리) 측에 서서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 상도동을 방문해 신년인사를 할 때 YS가 너무 직선적이고 솔직해 당황했다고 술회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안 밀었으면 대통령 되기 어려웠을 것”

정치권의 에피소드지만 “DJ가 1 대 1로 붙어 이길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 YS”라고 했던 말은 유명하다. YS도 스스로 “내가 말을 대단히 못하지요”라고 반문할 만큼 그는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요령을 부릴 줄 모른다.

“내 발음도 영 시원찮지? 나는 옳게 한다고 하는데, 경주에 갔을 때 경주를 국제적 ‘강간도시’(관광도시)로 만들어야겠다고 그랬다면서 사람들이 웃데.”

이런 농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영어권의 상류층 사람들은 샌드위치 화법을 즐겨 사용한다. 자신이 의도한 내용은 대화하는 중간 중간에 넣고, 처음과 끝에는 마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처럼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9단인 YS에게 그런 화법은 없다. 한나라당 공천을 실세 몇 사람이 좌지우지했다는 당 안팎의 여론이 팽배할 때, 그 중심에 있는 인물들에 대해 국민은 YS의 거침없는 발언에 대리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

그만큼 한나라당 공천이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물론 “절대 과반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나라당에 찬물을 퍼부은 것도 YS였다. 과반 확보에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당 내외에서 사실상 과반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을 보면 YS의 혹평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반 한나라당 정서를 대변하듯 노골적으로 공천 실패를 호되게 비판할 수 있는 사람도 김 전 대통령 외에는 없었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한나라당에 입당을 하면서까지 지원했던 JP와 통합민주당을 원격조종한다는 구설수까지 들으면서 자신의 아들과 측근이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던 DJ도 정치 원로로서는 같은 입장에서 당 공천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YS처럼 드러내놓고 질책하지는 못했다.

지난 4월 말,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한 YS의 불편한 심기와 MB정부의 인기 추락 원인과 해법 등을 듣기 위해 상도동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YS는 다소 시차는 있지만 중요한 한국정치사의 질곡 속에 남아있던 내용까지 털어놓았다.

그간 다소 소홀히 취급됐거나 대륙(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던 대만 관련 행보에서부터 김일성의 다급했던 상황까지, 그는 평소의 계산 없는 언어의 궤적을 일탈하지 않고 기억하는 대로 전해줬다.

YS는 팔순을 넘은 나이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김기수 실장과 김상학 비서관이 배석했고, 가끔 기억이 흐린 것을 확인 차 물어가면서 인터뷰는 진행됐다.

- 지난 대선에서 MB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셨습니다. 정치 9단답게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보신 것인지요? 아니면 MB를 택한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대선 때만 아니라 후보 경선 때부터 밀었지요. 그 후에 관계가 이상하게 돼서….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MB가 당선되면 누구를 뭐 시켜야겠다, 그런 욕심을 가졌던 것은 전혀 아니었고요. 처음에 고민을 조금 하고 생각도 여러 날 했는데, 사실 흠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도리 없다, 그래서 민 거지요.”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말씀이신지?
“내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성인군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성인군자로 생각해서 미는 것은 아닌데… 그렇지만 선택하려면 MB를 하든지, 박근혜 전 대표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지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박근혜 전 대표를 밀기가 좀 그래서 MB를 밀었던 거요. 1년4개월 동안이나…. 내가 사력을 다했단 말이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대통령 되기 어려웠지. 후보 경선에서부터 쉽지 않았어요. MB는 당에서 지고 밖에서 이긴 것인데, 부산을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민주계가 뛰지 않았으면 거기 (표가) 그렇게 나왔겠어요? 박근혜 쪽으로 많이 갔겠지.”

- 민주계인 서청원 전 대표는 박 전 대표 쪽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리로 갔지요. 김무성이도 갔고. 그건 내가 민주계를 움직이기 이전부터 그쪽(박근혜)하고 얘기가 있었고, 그쪽하고 신의를 지켜야 하는 건 중요하기 때문에 김덕룡이를 제외하고는 내가 강력히 말하지 않았어요. 만약 내가 한곳으로 모이라고 했으면 달라졌겠지만 내가 그렇게는 안 했지요.”

여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내막도 있었다. 최근 만난 YS의 측근 중 한 명인 구 민주계 A의원은 “YS가 심정적으로 MB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들 김현철 씨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원칙도 없는 사적인 공천”

A의원에 따르면 후보 경선 전부터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서청원 전 대표와 최병렬 전 대표를 캠프에 합류시키고, 홍사덕 전 부의장까지 대거 ‘박 캠프’로 집결할 것이라는 정보가 MB캠프 쪽 안테나에 들어오자 사실상 MB캠프 외곽을 맡았던 B의원이 YS를 찾아갔다는 것.

그때 B의원이 상도동에 가지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아들 김현철 씨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총선 공천 기준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 김씨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있었음에도 B의원은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B의원은 비록 민주계 인사는 아니었지만, 상도동계와 오랫동안 친목을 다진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1996년 총선 때 김현철 씨의 막강한 영향력 덕분에 신한국당 공천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후보 경선이라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구연을 생각할 때 그가 YS를 찾아와 도움을 간원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김현철 씨는 공천 기준으로 인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B의원은 YS 앞에서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총선 후 YS가 불쾌감을 보인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A의원은 “B의원이 그렇게 하고도 YS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정작 YS는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 문제(김현철 씨 공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어쨌든 YS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기 때문에 흠이 있어도 MB를 밀었던 것이지, 처음부터 다른 목적은 없었다고 분명히 했다.

-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 대해 상당히 파격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겁니까?
“이미 누차 지적했지만 한마디로 그런 공천은 역사 이래 없었던 일이고, 엉터리였습니다. 정당에 있어서는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데, 그런 철학도 없이 일반인들도 아니고 당에서 당규를 멋대로 해석하고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공천을 했던 거 아닙니까? 정당이 자기 당의 이름을 내걸고 출마하는 후보를 결정하는데 외부 인사들이 심사하도록 했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얘기지만, 그렇게 해서 민의가 반영된다면 또 모르겠어요. 그렇게 됐어요? 국민이 그 사람을 지지하느냐, 국회의원생활에서 공로가 있느냐, 그걸 죄인이나 다루고 심판하던 법조인이나 바깥에서 딴 일 하던 사람들이 어찌 평가를 해요? 참 희한한 짓을 한 거고, 난센스지요. 그랬기 때문에 실세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준 거고, 원칙도 없이 사적인 공천이 된 겁니다.”

YS가 “정당에 있어서는 정치가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지적한 것은 총선의 계절이 도래한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언급했던 것. 그리고 지난 1월 초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강재섭 대표를 대리해 상도동을 방문했을 때도 똑같은 강도와 내용으로 일갈한 바 있다.

상도동 예방을 마치고 돌아온 나 대변인으로부터 보고받은 강재섭 대표 등은 YS의 그러한 발언이 김현철 씨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고 오히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것이 결국 이재오·이방호 전 의원이 주축이 된 MB계와 박근혜계 사이에 충돌을 일으키는 핵심 도화선이 된 것이었다.

“내가 만든 당인데 민주계 다 빼버려”

애초부터 공천의 비무장지대는 없다면서 소위 주류 측이 사선처럼 쳐놓은 경계선은 당규 3조2항이었다. 공천 부적격자의 기준으로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였다. 물론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시한이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 3조2항을 적용하면 1998년 ‘한보비리사건’에 연루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현철 씨도 공천받을 수 없고, 2000년 생활비 명목으로 경쟁 후보에게 돈을 준 혐의로 벌금형을 받고 1996년도 수뢰사건까지 겹친 김무성 의원도 공천에서 제외된다.

YS는 말을 이어갔다.

“첫째는 공천이 아주 문제가 있었고요, (MB가) 경선 때도 그랬지만 대선 때까지 중간 중간에 얼마나 흔들렸어요? 심지어 남의 당 후보를 뽑는데 저쪽(통합민주당)에서까지 온갖 문제를 들추고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이지. 그럴 때도 내 입으로 흠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랬지만 끝까지 밀었잖아요? 그리고 이건 참 정치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한나라당은 사실상 내가 만든 당이잖아요? 자기들이 이름을 두어 번 바꾼 것뿐이고. 이회창이가 이름을 바꾸면 딴 당이 되는 것처럼 말도 아닌 소리를 했지만, 원래 민주자유당이었거든.”

- 그런데 이번에 민주계가 뒤로 밀렸다는 거죠?
“그 때부터 이어져온 당이 한나라당이고, 내가 만든 당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중요한 자리를 주라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 민주계 사람들을 공천에서 완전히 빼버린 깁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덕룡·박종웅·김무성인데, 이 세 명을 공천 안 준 겁니다. 더구나 김덕룡이는 후보 경선 때 박근혜한테 가려고 그러는 걸 내가 MB를 지원토록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공천에서 떨어뜨려버리고, 그건 참 인간적으로 할 일이 아니지요. 그러고 박종웅이는 내 집을 들락거린 측근인데, 대선 때 (MB가) 직접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 해서 데려가 놓고 공천에서 빼고, 있을 수 있는 일이냐는 말이지. 박종웅이는 뭐가 되는 거야? 김무성이도 아예 잘라버릴 작정을 했고 말이야.”

- 몹시 착잡하고 서운하셨겠습니다.
“민주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세 사람이고, 그래도 이름 있는 사람이 그 세 사람인데 우째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이야? 내 비서를 했던 사람들이 박진이라든가 정병국이라든가 이성현이가 있지만, 그 사람들을 꼭 민주계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거든요. 진짜 민주계로 어려울 때 막 싸우고 그랬던 사람이 김무성·김덕룡·박종웅, 이런 사람들이거든요. 세상에! 싹 뺐어요. 완전히 뺐어. 민정계 부스러기, 새로 된 사람들뿐이야.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민주계이고, 그래서 한나라당이 민주화 얘기를 하더라도 당당했는데…. 지금 한나라당은 무주공산입니다.”

- 정재문 의원은 5선 의원으로 민주계이지만 아예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 정 의원이 있다. 민주계지. 정말 참 착합니다. 정 의원을 봐야겠어. (YS는 배석한 김기수 실장에게 며칠 내로 점심을 하자고 연락하라는 지시를 했다.) 그 사람이 인물이야. 시키지 않아도 어려운 일을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대통령 때 왜 그런 사람을 키우지 않았는지 말이야(김기수 실장이 호남사람 배려하시느라 정 의원 같은 경상도 분은 밀리지 않았느냐고 하자, YS는 멋쩍게 웃었다). 그래 말이지. 나중에 반드시 입각시켜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지역안배 한다고 하다 보니 놓친 거지. 굉장히 유능한 인물이야. 그런 사람 드물어. 큰일을 해놓고도 소리가 안 나고 말이지. 국회 외무위원장을 두 번이나 맡겼는데, 단 한 번도 잡음이 안 나고, 그런 능력이 있어요. 그 사람이…. 정 의원 같은 사람이 진짜 사람인데….”

-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했겠습니다?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깁니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난 거지요. 한때는 우째 이럴 수 있느냐, 참 분했고요. 그래서 내가 김무성이 선거구 가서 한나라당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된다고 그랬던 겁니다. 한국의 모든 신문에 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산은 완전히 무소속 바람이 불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무소속이 그렇게 많이 된 거지요. 생각해 보세요, 김무성이는 그나마 압도적으로 당선돼서 오히려 이제는 한국적인 인물이 됐지만 김덕룡이나 박종웅이나 다 내 비서 출신 아닙니까? 내가 참 어려울 때 비서 하던 사람들이고, 민주계 맥을 이어오는 사람들인데 완전히 탈락시켜 버리고, 게다가 민주계의 박관용 씨 아들, 김수환 씨 아들, 최형우 씨 아들, 싹 무시하고 전부 공천을 안 줬어요. 내가 만든 당인데…. 역대 정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정치도의상 그러면 안 되지요. 도대체 상상 밖의 짓을 한 겁니다.”

- JP도 자민련계 사람들을 통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내가 지난 대선 때 JP도 MB 지지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 사람은 후보 경선 끝나기 하루인가 이틀 전에 입당까지 했어요. 나는 입당 같은 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경선 도중인데 만나서 이야기했지요. 이명박 후보가 흠은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이지. (JP가) 동의했어요. 그 후 공천 문제로 시끄러울 때인데, 그게 지난 달 하순(3월26일)인가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람도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그게 신문에도 났더구만.”

당시 JP는 “40년 넘게 정치를 하면서 처음으로 두세 사람 공천을 부탁했는데, 그것조차 외면당했다”면서 “가타부타 연락조차 해오지 않았다”고 격노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나라당은 JP가 10선 의원이 되기를 기대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충청권 유세도 거부하고 등을 돌린 게 아닌가 해석하기도 했다.

결국 공천파동은 인위적으로 계보정치를 조각 내고, 정계 원로들을 곤경에 빠뜨렸으며, 정치권의 화합보다 대립과 적대감의 깊은 골을 파놓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었다.

- 항간에 유포돼 있어서 여쭤봅니다만, 경선 때 MB를 지원하면서 이번 총선 공천에서 민주계 20석, 전국구 2~3석 정도를 공천에서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민주계 전·현직 의원들이 여의도 모 식당에 모였을 때 취합했고, 그 뜻을 김 전 대통령께서 MB를 만나 말해 주도록 건의했다던데…. 사실인가요?
“나는 고려해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이었으니까. 내가 만든 당이니까요.”

40년 정치인 “JP도 화 많이 났더라”

- MB도 공감하고 동의했나요?
“그건 이래 얘기하지요. 언론에서는 류우익 실장이 찾아온 후에 내 심정이 매우 복잡하다, 이래 보도를 했던데…. 내가 (MB한테) 직접 전화를 할 필요는 없고요. 비서실장을 불러서 얘기했습니다. 정무수석하고 같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그 얘기를 했지요. 내가 굉장히 노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정치는 신의인데, 전직 대통령인 내가 경선 때부터 대통령 후보로 만들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고, 대선 때도 그래 했으면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한테까지 구체적으로 말 안 해도 다 아는 거 아닙니까? 내가 민주계 수장이고, 내가 만든 당이고, 민주계가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의 현실정치에서나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를 (MB도) 이해하고 알겠다 했는데 말이야. 내 말 그대로 전하라고, 아주 굉장히 화를 냈어요.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MB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러니까 그대로 다 전달이 됐고, 자세히 이야기 들은 거지요. 비서실장한테 보고 다 받았다 그래요. 그러고, 죄송하게 됐다 하고. 그래서 (MB한테는) 사실 화를 내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죄송하게 됐다 하는데, 또 미국 떠난다고 하는데, 막 그러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잖아요? 하여간 당이 잘못하는 건지, 참모들이 뭘 모르는 건지, 참 상상 밖의 일을 하데요.”

- 이제는 분이 좀 풀리셨나요?
“그걸 밤낮 생각하면 분해서 병 나지요.”

- MB도 답답하고, 당이나 참모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 총선 결과는 당초 한나라당 압승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비례대표를 합쳐 153석을 확보했으니 과반에서 겨우 3석을 넘었습니다. 정계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요. 공천 결과를 보고 과반수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봤어요. 그런데 3석 넘었으니, 이게 절대과반수가 못 되는 거지요. 분과위원회까지 확보하려고 하면 171석이 돼야 되거든요. 그렇다고 정계개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천은 아주 잘못됐다, 공천만 잘했으면 대통령선거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랬든지 어쨌든지 압도적으로 찍어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중요하게 봐야 할 게, 이번 투표율이 40%대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없는 일이고, 더럽다고 투표하러 안 간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꼴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한 20% 얻어가지고 국회의원 된 사람도 있어요. 대표성이 없는 거지요. 과반수는 얻어야 대표성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국회의원에 대해 존경한다, 이런 게 없어요. 그러고 우리는 전에 국회의원들한테 반드시 애국심이 있었다고요. 전부가 그랬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 내가 3대 때부터 국회의원을 해봤지만 요새는 애국심이라는 말이 없어졌어요. 그런 말을 사용하는 정치인도 없어요. 이게 심각한 이야기라니까요.”

이명박정부 출범 당시 60%에서 출발했던 지지율이 불과 두 달여 만에 25%대로 급락했다. 여론조사기관과 방식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지지율은 최소한 반 토막 난 셈이다.

“요즘 국회의원 애국심 없어”

17대 대선 투표율이 63%로 역대 최저였음에도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이기에 체감지표는 더욱 크게 느껴질 터. 화제를 그 부분으로 돌렸다.

-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 가량은 이른바 ‘허니문 기간’입니다. 여러 가지 개혁 정책도 이때 강력한 힘을 얻어 추진하고, 국민의 지지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MB정부는 출범 2개월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났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십니까?
“나는 인사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이거 저거 다 하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겠지요. 총선도 완전히 국민의 뜻을 버리고 저그들 마음대로 해버렸고, 뭐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총선도 사람을 쓰는 문제거든요. 이걸 몇 명이 자꾸 자기들 생각에만 맞춰서 하려니 국민들 입맛에 맞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인기가 내려갈 수밖에 없잖아요? 보세요, 지금 몇 달이나 됐어요? 내가 대통령일 때 처음에 80%로 출발했는데, 금융실명제 하고 하나회 척결하고 90%까지 올랐습니다. 어떤 정권도 두 달 만에 반 토막 나는 일은 없었어요. 국민이 뭐라고 하든 말든 인수위원회가 무슨 큰 권력이나 되는 것처럼 설쳐대고 그랬거든요. 결국 인수위원이 부동산 사기치다 걸려서 나가고 그랬잖아요? 몇 명이 모여 앉아서 저그들이 챙길 사람들 갖고 싸우다 보니 인물이 없었던 겁니다. 뭐라 했지? 그 무슨 배우 이름도 나오고.”

- 고소영·강부자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고려대학교·소망교회·영남사람들만 갖다 앉혔다 이거 아입니까? 처음부터 많이 삐걱거렸어요. 수석이나 장관을 다 못 채워서 국무회의도 못하고 그래 시작했잖아요? 그러고 3~4명 날려도 뭐 달라진 게 없으니까 욕을 먹고 말이지요.”

- 이명박정부에서 고전하는 부분도 사람이라고 토로하더군요. 언론 압박으로 어떤 이가 낙마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대안을 찾을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다는 거지요.
“사람 쓰는 거 참 어렵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니까 어려운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쉽게 쓰려고 해요. 공천하는 거나 관료를 뽑는 거 보면 기가 막힙니다. 검증을 철저하게 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빼야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서 빼고, 누구랑 안 친해서 빼고. 그런 좁쌀 같은 생각으로는 사람 못 씁니다. 지난번 노무현정부 때 (한나라당) 공천 기준이 ‘나이 60’이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 뽑아 놔서 나아진 거 있어요? 국민이 MB 나이 가지고 시비 건 적 있어요? 경륜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진짜 보물입니다. 펄떡펄떡 하는 사람들은 그런 자리에 쓰고, 노련한 사람들은 능력에 맞는 자리에 써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정권에는 경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합니다. (MB가) 정치경험이 짧고, 그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비슷하니까 자꾸 나라가 시끄러운 깁니다. 적재적소라고 하잖아요? 써야 될 자리에는 써야 될 사람이 따로 있는 깁니다. 거기에 나이 따지고 학교 따지고 개인적 인연 따지면 좋은 사람 찾기는 더 어렵습니다. 자꾸 여러 조건 따지지 말고 경험이 충분하고 나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 구해야 돼요. 사람 키우는 거는 그 다음 문제고요.”

- 이명박정부에서 내놓은 정책들도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는 말이 나올 만큼 교육정책부터 입안과 집행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리고 MB에 대해서도 바쁘기만 하고 내용은 없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뭐가 대통령이 할 일이고, 어떻게 국정을 이끌지 철학이 있어야 됩니다. 처음에 커피 타 마신다고 맨날 신문에 났잖아요? 전기 아낀다고 청와대 불 끄러 다닌다고도 하고…. 밑에서 이걸 홍보 차원에서 자꾸 낸다는 말이지요. 커피 타 마시는 거야, 나도 그리 마실 때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기 무슨 홍보거립니까? 대통령이 일을 하는 게 자꾸 나오고 그래야지, 커피 타는 거 자꾸 나오면 안 되잖아요? 그거 하라고 청와대 보낸 것도 아닌데…. 인사도 협의는 충분히 해야 되지만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나는 대통령 때 입각시킬 사람이 언론에 먼저 나오면 그 사람 바로 빼버린 적도 있어요. 왜냐? 내가 결정 안 했는데 언론이 먼저 임명하는 꼴 아닙니까? 그 사람이 언론 플레이를 했거나 내 주변에서 저거들 욕심을 말한 거 아닙니까? 그걸 용인하면 인사가 제대로 안 됩니다.”

광우병파동, 민심 저버린 결과

- 요즘 광우병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만.
“민심이 얼마나 무섭다 하는 걸 깨달아야 됩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도 했지만, 천심이 뭡니까?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욕심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하고 똑같아요. 건드리지 않으면 국민은 각자가 열심히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여기 대놓고 투기라고는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 가슴에 강부자니 땅부자니 하는 걸로 속을 찌르고, 참모들이라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 또 속을 상하게 하고, 공천이 잘됐든 잘못됐든 친박연대가 민심으로 당선된 건데 청와대가 나서가지고 ‘니들이 친박연대라면, 우리는 명박고대다’ 이런 식으로 맞상대나 하고, 그걸 보는 국민이 어찌 생각을 하겠어요? 게다가 기름값 내려주겠다, (휴대전화) 통화료 내려주겠다, 교육 여건 좋게 하겠다, 그런 경제 약속을 믿고 서민들은 잔뜩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이런 것이 국민들 눈에 보이니 어찌 지지도가 올라갑니까? 광우병도 같은 맥락에서 보기 때문에 저 난리를 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불신이 쌓이니까요. 민심이반은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크게 실망 안 합니다. (MB가) 사심을 버리고 덤비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에 큰 줄기를 잡고 나가면 민심은 또 이해를 할 겁니다.”

글■김민규 월간중앙 기자 (min13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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