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과정.사용처 盧.이현우씨 엇갈린 진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할까.
「주군」과 「신하」의 관계였던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과 이현우(李賢雨)전경호실장 사이에 비자금 조성경위등을 놓고 진술이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어리둥절하다.
우선 비자금 조성과정부터 말이 엇갈린다.
盧씨는 1일 검찰조사에서 『말할수 없다』『모르겠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대부분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만 『기업대표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돈을 받았고 면담일정 조정은 이현우실장이 담당했다』고 조성경위 일부를 털어놔 李전실장이 전모를 알고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李전실장은 지난달 23일 새벽 검찰조사후 『대통령이 건네준 수표를 받아 이태진(李泰珍)전경호실경리과장에게 전달했을뿐 자금조성과 사용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심부름 역할만 했을뿐 조성은 전적으로 盧씨가 도맡았다는 것이다. 비자금 액수에서는 양쪽의 진술이 더욱 차이가 난다.
李전실장이 밝힌 비자금은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4개계좌에 예치된 485억원이 전부.하지만 盧씨는 지난달 27일 「대국민사과문」에서 5,000억원을 조성,1,700억원이 남아있다고 밝혔다.30일 검찰에 제출한 「수사참고자료」에서는 잔 액을 1,857억원으로 수정했다.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 李전실장이 이정도밖에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李 전경리과장을 시켜 동화은행등에 수많은 비자금계좌를개설한 것을 보면 수긍하기 힘들다.
지난달 박계동(朴啓東)의원의 비자금 폭로가 나온뒤 비자금 존재를 알게된 시점도 모호하다.
盧씨는 『4,000억원설 비자금파동이 나왔을때 돈이 없는 것처럼 위장한 것에 대해 할말이 없다』고 진술,이전부터 비자금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따라서 비자금 조성과정부터 관여한 李전실장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인데 그는 폭로후 통장을 확인하고야 뒤늦게 알게됐다고 변명했다.
비자금 사용처도 마찬가지.
盧씨는 정당운영비와 격려금등에 사용했다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반면 李전실장은 『전혀 아는 바 없다』고 거듭 자신과의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같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진술은 검찰조사가 진행되면서 진실을드러낼 전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