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장·차관 나랏돈으로 생색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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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우형식 1차관, 박종구 2차관, 일부 교과부 실·국·과장들이 모교를 방문해 국가 예산으로 각각 500만~2000만원씩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도서 구입비 또는 교구 구입비 명목으로 증서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교과부 간부가 모교에 생색을 내기 위해 국가 예산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용산초등학교, 박 차관은 13일 충암고, 우 차관은 16일 대전고를 각각 방문했다. 찾아간 학교는 이들의 모교였다. 교과부는 이들의 학교 방문에 앞서 낸 보도자료에서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2000만원, 두 차관은 각각 500만원의 증서를 학교 측에 전달했다. 또 스승의 날(15일)을 전후해 실·국·과장들의 학교 방문이 잇따랐다. 교육부는 간부 27명이 모교 혹은 다른 학교를 방문토록 했다. 이 중 22일 현재 학교를 방문한 간부는 4명이다. 이들은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뒤 장관 명의의 학교발전기금 증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서에는 학교 이름과 방문 기념으로 도서 구입비 등으로 5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씌어 있다. 이렇게 해서 4월 이후 나간 돈이 모두 5000만원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 돈은 교과부 특별교부금에서 나갔다”고 설명했다.

증서를 받은 학교는 시·도 교육청에 이를 제출하고, 시·도 교육청들은 교과부에 지급을 요청하면 학교가 돈을 받을 수 있다. 장관 명의의 증서를 받은 한 초등학교는 “시·도 교육청에 지급을 요청했는데 돈은 아직 못 받았다”며 “영어교육기자재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별교부금은 교과부 쌈짓돈=올해 교과부의 특별교부금은 모두 1조1000여억원이다. 특별교부금의 30%인 3300억원 정도가 지역 현안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장·차관이 학교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달 초 한승수 총리가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내놓고 온 1000만원도 교과부 특별교부금이다. 교과부 한 관계자는 “장·차관이 학교를 방문할 때 특별교부금에서 수백만~수천만원씩 지원하는 것은 수십 년 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는 장·차관은 물론 국·과장급 공무원이 모교를 찾아가 교부금을 줘 논란이 일고 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특별교부금이 쌈짓돈이라는 비난이 있어 3조원이 넘던 돈을 1조원대로 삭감했는데도 아직 이런 관행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차제에 집행 명목에 있어 불투명한 교부금은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에 예비비가 있는데 굳이 부처별로 교부금을 가지고 운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공무원들의 모교 방문은 좋은 취지지만 모교에 교부금을 전달하는 것은 타 학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철 교육복지지원국장은 “이번엔 실·국장들이 장관을 대행해 학교를 찾아가 증서를 전달한 것이어서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며 “앞으로는 현장 방문은 계속하되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 하겠다”고 해명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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