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럼>"추한눈물"과 부패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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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시중의 화제는 단연 노태우(盧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조성 파문이 압도한다.『세상에 대통령이 그처럼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으레 그 처리문제로 이야기가 옮겨진다.전직대통령을 과연 구 속할 것인지,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이나 은행관계자는 어떻게 다룰것인지를 놓고 점치기에 바쁘다.
루머로만 들어오던 정치자금 실체가 전직대통령의 직접확인으로 세상에 밝혀지자 국민들은 심한 배신감과 참담함을 가눌길 없는 심정이다.때문에 여론은 정치적 해결보다 구속,사법적 해결쪽으로쏠려있다.
사실 대통령의 부도덕성 파문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는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그런데 우리는 또한번 연희동의 추한 눈물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누구를 탓하랴.투표에 의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니 우리에게도 책임의 일 단은 있다.
여하튼 전직대통령의 부도덕한 행동이 나라전체를 비참하게 만들고,국가의 도덕성과 대외신뢰도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외국신문들은 국민의 분노는 크지만 한국정치인.관료의 부패관행은 변화가없을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미국의 CNN등 주요방송이 흘려보내는 이 비자금소식은 흡사 한국이「부패공화국」인양 전해지고 있으니 비감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 나쁜 이미지는 대외거래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대외수주(對外受注)에 지장을 받고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신용도가 떨어져 국내기업의 해외차입조건이 까다로워 국내외투자에 차질을 가져오기도 한다.
대내적으로는 이 파문에 연루된 금융기관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고,비자금을 댄 대기업들은 어떤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경제가 잘 돌아갈 턱이 없다.
이미 마련해 놓은 내년의 대형투자사업등 전면적인 사업계획을 확정짓지 못하고 수사방향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경기의 연착륙(軟着陸)으로 안정성장을 기대하는 내년 경제계획을 다시 짜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금년에 이미 수출이 1,000억달러를돌파하는등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려는 중대한 시기에 비자금파문으로 정체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기업인의 피나는 노력과 국민의땀이 결실을 맺어가려 할 때 뒷다리를 잡힌 것 이다.
경쟁국인 대만은 뛰어가고,중국.말레이시아등이 한국추월에 열을올리고 있는데 우리는 파문수습에 시간을 소비하게 됐으니 울화가치밀 일이다.그러나 시간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우리 국민들은 능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전직 대통령이 검찰에소환돼 조사를 받고 유죄가 인정돼 구속까지 된다면 이 땅에서 부정부패는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있기 때문이다.대통령이 법적 처리를 받는 상황을 지켜본 집권자나 정치인.관리들은 과거와 같은 그런 부정한 짓을 내놓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물론 그런 부패관행이 하루아침에 개선되리라고는기대하지 않는다.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본다.
이에 앞서 정부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 부패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이를테면 통치와 경제활동의 먹이사슬을 끊는 새로운 관행을 창출해 이것이 정착되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다.그래야만 우리는 제3의 연희동 눈물을 구경하지 않게 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는 가급적 간섭을 줄이고 인.허가에 관련된 각종 규제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인위적인 진입(進入)규제가 지금까지 기업과 정치권.관료를 연결짓는 가장 핵심적인먹이사슬이 돼 왔던 것이 현실이다.민간경제계가 그토록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규제완화에 인색해온 것도 따지고 보면모두 이러한 이권과 먹이사슬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는 핵심은 무엇보다도 집권자와 정치인.관료의 도덕성 회복에 달려있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이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위정자의 마음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부패근절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의 자성과 기업인의 자정(自淨)노력이 국민적 도덕성 회복의열쇠가 될 것이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