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축제여행>4.끝.종로 "국악로 대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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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우리는 이 가을의 축제여행을 서울 종로바닥에서 마치려한다.
도대체 번잡하기 짝이없는 이나라 최대 도시의 한복판에서도 우리의 축제를 싹틔워 꽃피울 수 있는 것일까.
지난달 31일 오전10시30분 서울 창덕궁 돈화문앞 광장.종로3가 단성사까지 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제2회 「국악로 대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렬이 출발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고동이 세번 울어/군악이 일어나니/엄위(嚴威)한 나팔이며/애원한 호적이라… 한 가운데 취고수(吹鼓手)/흰 한삼(汗衫) 두 북채를/일시에 수십명이 행고(行鼓)를 같이 치니/듣기에도 좋거니와/보기에도 엄위하다』(한양가).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장쾌한 태평소와 나팔소리에 화들짝 놀란비둘기 떼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국방부 국악대가 연주하는 대취타(大吹打)와 사물놀이 리듬이 빚어내는 묘한 협화음에 맞춰 한복차림의 여성기수단에 이어 전통의장대,국악인,남사당패 사물놀이,국방부 군악대 행렬이 가다 섰다를 반복하며 옛 행렬모습을 재현했다.
종로문화원이 지난해 종로3가를 「국악로」로 명명하면서 올해로두번째 맞은 국악로대축제는 대취타행렬 재현과 국악공연에 전통한복축제를 곁들여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사로 마련됐다.
도심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힘든 전통행렬을 구경하던 시민들의 열기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다소 쌀쌀한 날씨를 무색케 했다.
신문보도를 보고 왔다는 변수민(卞洙珉.77.서울 수유동)씨는『오랜만에 길거리 행렬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앞으로 서울거리에도 이런 축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낭여행으로 한국을 방문중인 캐나다 태생 인도인 노린 헤인즈(29.여.디자이너)는 『여성들의 한복이 인형처럼 너무 아름답다』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볼거리.들을 거리가 귀했던 시절,서민들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였던 거리행렬이 오랜만에 현란한 색채와 웅장한 음향으로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온통 사로잡는다.음악도 연주자도 청중도 함께 움직이는,그래서 살아있는 「라이브 공연」이다 .
오후1시쯤 행렬이 도착한 곳은 종묘앞 시민공원.
이른 아침부터 인근 노인들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엿장수와 막걸리장수도 대목을 만난듯 싸구려 스피커로 각설이타령을연신 틀어댔다.
왕년의 명MC 곽규호씨의 사회로 진행된 「전통한복축제」에서 50명이 본선에 진출해 한복의 맵시를 마음껏 뽐냈다.안경주(22)양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고 유일한 외국인으로 참가한 일본인 우키코(42)는 문희즘 한복연구소가 디자인한 전통의상으로 우아미상과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다.심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방부 군악대와 국악대는 번갈아가며 『고향의 노래』 『대취타』를연주해 흥을 돋웠다.
이번 축제를 기획한 종로문화원장 반재식(潘在植.58)씨는 『종로3가는 예부터 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라며 『내년 종묘앞 시민공원에 국악상설공연장이 완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태의연한 개회식,좁은 행사장 공간,매끄럽지 못한 진행이 비를 맞고 서있던 구경꾼들의 빈축을 샀다.하지만 도심축제도 알뜰히만 가꾸어 나간다면 충분히 뿌리를 내릴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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