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國기행>이탈리아 영토내 산마리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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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그믐달빛을 받아 산꼭대기에서 차갑게 빛나는 하얀 성채로 향하면서 왠지 머리끝이 쭈뼛했다.한밤중 이탈리아땅 동부 한귀퉁이에점인양 박혀있는 산마리노가 자리잡은 티타노산 정상을 향해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식으로 기어오르면서 터무니없이 이 세상을 벗어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그러나 다음날 새벽 산정의 호텔 창문밖으로 펼쳐진 정경은 탄성이 절로 일 정도로 신선했다.딴 세상에 온 것 만큼은 확실했다. 망망대해인양 끝없이 펼쳐진 마을과 마을,그리고 그 너머로일렁이는 검푸른 아드리아해가 온갖 잡생각들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차 필요없어요.30분이면 다 돌아다닐텐데 차가 무슨….』3개의 요새로 이뤄진 산마루 성채에 언제 오르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호텔 주인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그러했다.
해발 750의 티타노산 기슭을 뱅뱅 감싸며 형성된 산마리노는제주도의 불과 30분의 1크기(61평방㎞.인구는 2만4,000명). 서기 300년께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를 피해 근처 아베섬에서 숨어든 석공 마리노에 의해 창건된 이래 타국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산마리노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국가임을 자랑하고 있다.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온국민이 힘을 모아 10세기 이후쌓아온 3개의 요새는 산마리노의 실루엣을 환상적으로 만들어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겹겹이 감싼 성곽사이로 난 회랑을 따라 곡예하듯 나선형 계단을 올라 망 대에 이르면 거센 삭풍에 온몸이 날아갈 듯하다.
가을이 오색으로 무르익은 능선을 따라 걸으면 각각의 봉우리에올라탄 나머지 요새에 이른다.
***관광객 年 400만 완만한 돌길을 굽이굽이 걸어내려오면서 빽빽히 들어선 기념품점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산마리노의 특산품인 수공예품과 세라믹타일,기기묘묘한 술병에 담겨 구매욕을 자극하는 과일주들,기념엽서와 우표들을 보노라면 시간가는 줄모른다. 『아니,24회 올림픽은 한국이 개최했는데 왜 산마리노서 기념주화를 만들었지요.』마치 큰 발견이라도 한듯 따져묻자 기념품 판매원은 『아,우리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18명의 선수를 파견했었거든요.』자랑스럽게 말했다.
산허리 중간쯤서 한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나라 정치의 심장부인 국회의사당 광장.광장이라야 웬만한 집 마당만 하지만 매년 4월1일과 10월1일에는 이곳에서 임기 6개월짜리대통령 두명이 화려한 취임식을 갖는다.
이들은 국민이 뽑은 60명의 국회의원들(임기 5년)이 선임한다. 9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지만 도시 곳곳에 문화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어 여타 소국에 비해 야무지다는 인상을 준다. 1300년대에 지은 성프란시스교회,그옆의 고대예술박물관.
무기박물관.밀랍박물관.자동차박물관.별난 것들을 모아놓은 호기심박물관.창건자 마리노의 유해를 보관한 성 바실리카등볼거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세계 처음으로 1600년대 우편업무를 개시한 것을 자랑삼는 이 초미니국가는 지난 92년 유엔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세중립국에 외교관계도 극히 제한된 국가가 「웃긴다」는 식으로 세계 언론에 보도됐는데 『뉴스감이 되기 힘든 이 나라가 주산업인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한 것』이라는 풀이. 다른 소국에 없는 군대도 버젓이 갖추고 있지만 화려한 복장을 한 요새수비대와 의장대 또한 관광객용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면서 관광수입으로 인해 국민생활의 질이 유럽 여러나라 못지 않은 것은 순전히 작은것을 강점으로 살려낸 「작은 고추」의 매운 지혜덕분이다.
▶관광정보=교통편은 대한항공을 이용,이탈리아 로마(매주 수.
토 오후1시45분 출발,직행,12시간20분소요)로 가서 다시 기차로 215㎞ 거리의 볼로냐를 거쳐 해변도시 리미니까지 간다(볼로냐~리미니는 115㎞).이탈리아~산마리노 국 경도시인 리미니에서는 오전6시55분~오후 6시30분까지 하루 9회 산마리노행 버스가 출발한다.불과 24㎞ 거리지만 산길이라 소요시간은40분.요금은 편도 약 2,000원.
호텔은 24개로 객실은 모두 480개.방값은 아주 저렴해 5만원이상이면 훌륭하다.언어는 이탈리아어,화폐는 이탈리아 리라사용.산마리노관광국 378-88-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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