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축구인생 다룬 다큐로 ‘칸’ 찾은 마라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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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어느 팀이 우승할까요. 첼시일까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일까요?”

프랑스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20일(현지시간) 난데없이 축구 질문이 쏟아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48·사진). 그의 축구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라도나 바이 쿠스투리차’(Maradona by Kusturica)가 비경쟁으로 선보였다.

영화는 마라도나의 영욕을 두루 보여줬다. 월드컵 우승 등 화려했던 전성기는 물론 마약·알코올에 빠졌던 어두운 과거도 숨김 없이 낚아챘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출신의 감독 쿠스투리차는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명장’. 유고 내전을 둘러싼 급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 다큐에도 미국과 부시 대통령 등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마라도나가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찍은 사진, 세계화에 반대하는 집회 장면 등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감독이 의도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마라도나는 ‘언론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축구선수도 세상에 대한 견해를 가질 수 있고, 무엇이든 말할 자유가 있다”며 “우리는 미국인과 똑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감독만이 나의 이 생각을 제대로 꿰뚫어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는 대통령이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들의 편”이라며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축구 말고도 많은 일자리를 주고 싶다”고 했다.

이날 마라도나는 유쾌해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마약중독 전력에 대해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걸 이겨냈고, 지금은 아침에 눈을 뜨면 두 딸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며 “마약에 빠지지 않았다면 훨씬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칸 영화제에서는 역시 마약 중독에 시달렸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을 다룬 다큐 ‘타이슨’도 상영됐다. 마라도나는 타이슨에 대해 “그도 나도 책임감 있는 어른들”이라면서도 “그가 고통을 겪어온 반면 나는 기쁨을 즐겨왔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 만족하고 인생을, 인생의 매 순간을 즐긴다”고 밝혔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과 키스를 했느냐”는 물음에도 “너무너무 많다. 다섯 명의 여자 형제, 두 딸, 예전 아내, 지금의 약혼녀,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라며 여유를 보였다.

그는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에 대한 불쾌한 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펠레는 마약에 빠진 마라도나에게서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마라도나는 “딸아이가 절대 펠레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라면서도 “저도 펠레에 대해 많은 얘기를 알고 있다. 그 또한 ‘어두운 면’이 있다. 그가 차라리 조용히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쿠스투리차 감독은 마라도나를 옹호했다. 그는 “마라도나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달리 보지 못했다”며 “마라도나는 기독교 확립 이전, 여러 신앙이 공존했던 로마시대의 신과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이에 대해 마라도나는 “유일한 신은 누구나 다 아는 ‘그분’뿐”이라면서 “나는 보통사람”이라고 겸손해했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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