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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통치의 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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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주 국회방송으로 생중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를 봤다. 보려고 해서 본 것은 아니고, 야심한 시간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됐다. 말이 좋아 FTA 청문회지, 사실은 미국산 쇠고기 청문회였다. 처음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보다가, 다음엔 혀를 차며 봤고, 마지막엔 인내를 시험하는 심정으로 봤다. 동문서답에 중언부언, 견강부회에 책임전가…. 장관들의 답변은 실로 실망스러웠다. 화가 치밀다가도 한편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당하지 못할 무거운 감투를 쓰고 있는 당사자인들 오죽 괴롭고 힘들겠는가.

가게 앞에 사나운 개를 매어두면 손님이 안 든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늘씬한 선남선녀가 현란한 노래와 율동으로 호객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사나운 개가 짖어대고 있는 가게에 누가 들어가겠는가. 아무리 좋은 물건을 싸게 판다 해도 안 들어갈 것이다. 비루 먹은 것처럼 추레하고 볼품없는 개가 지키고 있는 가게에도 손님이 안 들기는 마찬가지다. 취임 3개월도 안 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인사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업무량과 공무원 수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파킨슨의 법칙’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노스컷 파킨슨은 무능한 사람을 조직의 장으로 앉히면 조직 전체가 ‘바보들의 천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무능(incompetence)은 대개 질투(jealousy)와 함께 간다면서 둘을 묶어 ‘인젤리티티스(injelititis)’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무능질투 증후군’이라고 할까. 생각보다 흔하지만 치료는 매우 어려운 게 이 병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조직의 우두머리가 이 병에 걸린 이류라면,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삼류로 채우려 할 것이고, 다시 이들 삼류의 중간관리자들은 자기 부하직원을 모두 사류로 채워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누가 더 어리석은지 경쟁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 조직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둔하고 고집만 센 우두머리와 상대방에 대한 음모를 꾸미는 데 골몰하는 중간관리자들, 그리고 체념적이거나 어리석은 하급 직원들로 구성된 망조(亡兆) 들린 조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일류에게 국정을 맡겨야 하는 이유다.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손을 대려는 지도자, 자기보다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라야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지도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연히 운좋게 권력을 잡은 소인배일 뿐이다. 총명한 리더는 부하의 지혜와 능력으로 승부한다.

“현명한 군주는 지자(智者)로 하여금 생각을 자아내게 한 뒤 결정을 내린다. 그러므로 군주는 지혜에 궁하지 않다. 현명한 군주는 현자(賢者)를 임용해 그 능력을 발휘시킨다. 그러므로 능력에 궁하지 않다. 그리하여 성공하면 군주의 공덕이 되고, 실패하면 신하의 책임이 된다. 따라서 어떤 경우건 군주의 명예는 손상될 까닭이 없다. 이것이 통치의 규범이다.”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묘비명에 ‘여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쓸 줄 알았던 사람 잠들다(Here lies a man who knew how to enlist in his service better man than himself)”라고 썼다.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파문에 따른 인적 쇄신 문제가 나오자 “훈련 한번 세게 한 셈 치겠다”고 했다.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의 실패는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삶이 달린 문제다. 어울리지 않는 감투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당사자와 그 조직은 물론이고, 대통령 본인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잘못된 인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한번 믿고 맡겼으면 계속 가야 한다는 헛된 고집이나 ‘인사는 잘못의 시인’이라는 졸렬한 발상으로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인사는 만사이면서 동시에 통치권자의 최고 특권 아닌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